대화의 격(格)
대화의 격(格)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22.03.16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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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룡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이몽룡과 성춘향이 사랑의 대화를 교환한다. 이몽룡: 어지어 내 일이어 인연도 기이할사 언뜻 뵈온 님이 그 님일시 분명하이 광한루 예 보던 벗이 찾아온다 일너라. 성춘향: 옥경 광한루요-하늘에 있는 광한루 말이요-하늘에 선관 선녀로 있을 때에 서로 보던 벗이라고 해서 예 보던 벗이라고 했지요, 이들의 만남은 전생의 선관(仙官) 선녀(仙女)의 만남이 된다. 성춘향: 이 몸의 정렬함이 삼생에 뻗었으니 천상천하에 날 안달 님 없으련만 거처로 찾으시는 님을 막을 줄이 있으랴. 심산유곡에 숨어 있는 꽃이 벌을 찾을 수 없으나 벌이 찾아온다면 어찌 막겠느냐는 말이다. 16세 정도 나이의 춘향과 이도령이 이런 대화를 한다는 게 기특하다.

김종서는 원래 품성이 강직하고 거친 편이었다. 그가 육진개척 공로로 병조판서로 재직하던 중 의정부 회의에 참석하였는데 자세가 심히 오만하였다. 이에 황희정승이 한마디 한다. “여봐라 병판대감 의자 한쪽 다리가 짧은가보다 빨리 고쳐드려라”직설적이지 않지만 직접 말하는 것보다 천만 배 효과가 있다.

다크나이트에서 배트맨과 조커가 설전을 벌인다. 배트맨: 나를 원했지? 자 왔다. 그는 어디에 있지? 조커: 마피아들은 네가 없어져서 세상이 예전처럼 돌아가기를 원해. 그렇지만 나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걸 알아. 배: 그러면 왜 나를 죽이려고 하지? 조: (정색을 하고 웃으며) 난 네가 죽기를 원하지 않아. 네가 없으면 난 뭘해? 예전처럼 마피아들 등쳐먹고 살까? 배트맨 네가 날 완성시켜… 배: 내 규칙은 하나뿐이야. 조: 진실을 알려면 그걸 깨야 돼. 이 세상을 사는 유일한 묘책은 규칙 없이 사는 거야.

어렵지만 철학적이다. 배트맨은 고전적 질서를 상징하고 조커는 질서를 파괴(해체)하는 혼란을 상징한다. 이들의 싸움은 사회질서를 지키려는 자와 인간을 억압하는 도덕규칙을 파괴하여 그 바닥에 있는 인간 본성을 가감 없이 들여다보게 하려는 자와의 싸움이다. 질서를 지키고자 하는 자가 없다면 질서를 파괴하는 자는 존재의미가 없다. 조커의 존재는 배트맨이 있어야 의미가 있다. 그래서 조커는 배트맨을 죽이지 않고 때로는 살려주기도 한다. 악당과의 막가는 싸움에서 발생하는 대화지만 이들의 대화에는 철학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들의 싸움에 관심을 기울이며 지켜본다.

우리의 대선후보였던 A와 B의 대화를 들어보자. B: 조카가 그 여자 친구와 어머니를 37번 찔러서 잔혹하게 살해한 사건을 맡아서 데이트 폭력, 심신미약, 심신상실이라고 그 변호를 하고… A: 변호사라는 직업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고 해도 아 뭐 저의 부족함이었다고 B: 김만배가 남욱 변호사에게 대장동 개발이 이재명 게이트라고 하면서 4천억짜리 도둑질이라고 했다고 남욱이 검찰에서 진술한 게 확인이 됐습니다. 이런 후보가 나라 장래 이야기를 한다는 거는 국민을 좀 우습게 가볍게 보는 그런 처사 아닙니까? A: 대장동 사건은 도대체 몇 번을 울궈먹는지 모르겠는데…제가 그래서 여기서 하나 제안 드리겠습니다. 이거 대통령 선거가 끝나더라도 특검해가지고 반드시 특검하자는 거 동의해주시고, 두 번째 거기서 문제가 드러나면 대통령에 당선되어도 책임지자. 동의하십니까? B: 이거 보세요. A: 동의하십니까? B: 이거 보세요. 지금 뭐 대통령 선거가 국민학교 반장선거입니까?

이 대화에는 품격이 없다. 일국의 대통령 선거를 위한 토론회가 초등학교 반장을 뽑는 선거보다 격이 떨어진다. 이도령과 성춘향의 우아함과 소양도 여기서는 보이지 않는다. 황희의 촌철살인도 보이지 않는다. 배트맨과 악당 조커의 대화에서 보이는 깊이와 철학도 없다. 니가 죽어야 내가 산다라는 천박한 살벌함만이 있다. 이런 사람 중에 뽑으라고 하는 우리의 정치가 싫다.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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