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를 맞으며
봄비를 맞으며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22.03.16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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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애타게 갈망했던 비가 내렸습니다. 재앙이나 다름없는 역대급 가뭄과 역대급 산불이 휘몰아친 이 땅과 이 산하에 축복처럼 봄비가 내렸습니다.

그야말로 단비였고 생명수였습니다.

산과 들과 내는 물론 초목과 뭇 생명들이 타는 목마름을 해갈하고 봄을 만끽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비가 너무 좋고 반가워 들고 나온 우산도 펴지 않은 채 한동안 비를 맞고 걸었습니다. 오지랖 넓게 나랏일을 걱정하면서.

돌아보니 대한민국의 지난 한 달은 참으로 위태위태했습니다. 어쩌다가 이지경이 되었나 싶어 울화가 치밀기도 했습니다.

전쟁을 방불케 한 20대 대통령선거와 서울시 면적의 절반이 잿더미가 되는 강원도 산불은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지켜보는 국민들 가슴도 까맣게 타들어갔습니다.

역대급 비호감 선거와 역대급 초박빙 선거에 가슴을 졸여야 했고, 강풍에 속수무책인 정부의 산불대처능력에 분노했고, 삶의 터전을 잃고 탄식하는 이재민들을 보며 아파했습니다.

자기편 후보의 허물은 그럴 수 있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고, 상대편 허물은 있을 수 없는 사악한 일이라 여기는 몰염치와 이를 확대재생산해 이득을 취하려는 정치권의 행태에 실망하고 좌절했습니다.

그랬습니다. 가뭄에 대지만 갈라지고 산불만 난 게 아니었습니다. 선량한 국민들이 두 쪽으로 갈라졌고, 산불보다 끄기 힘든 증오와 저주의 불화살을 서로에게 쏘아댔습니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신화를 쓰며 세계 10대 경제대국이 된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자화상이었고 민낯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신은 대한민국과 한국인을 어여삐 여기셨습니다.

0.73%라는 적은 표 차이로 승패가 갈렸는데도 패자가 깨끗하게 승복하고 승자도 패자에게 감사와 위로 보내는 큰 축복을 주셨으니 말입니다.

선거후유증을 걱정한 국민들을 안도케 했으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위대한 국민들은 절묘한 표심으로 차기 정권에게 겸손할 것과 국민통합을 명령했고, 당선인도 그리할 것을 만천하에 공표했으니 지켜 볼 일입니다.

하여 봄비를 맞으며 간절히 희원했습니다.

진영 간, 지역 간, 세대 간에 벌어진 간극이 이성적으로 좁혀지기를, 국익과 국력의 명제 앞에는 여·야가 하나가 되기를, 공정과 상식이 살아 숨 쉬는 반듯한 사회가 되기를.

각설하고 봄비의 원형 속으로 들어갑니다.

겨울비는 머리를 적시고, 여름비는 옷을 적시고, 봄비는 마음을 적신다 했던가요.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이 말했다죠. `봄은 봄의 출생이며. 여름은 봄의 성장이요. 가을은 봄의 성숙이며. 겨울은 봄의 수장'이라고.

그렇습니다. 봄은 생의 시작이며 환희이며 찬란한 슬픔이기도 합니다. 봄비가 바로 그 봄의 씨앗이고 불쏘시게입니다.

봄비 소리만 들어도 짠하니 몸은 늙어도 마음은 소년인가 봅니다.

소리 없이 내리는 봄비가 새싹을 움트게 하듯 그리움을 움트게 하니까요. 문득 박인수와 이은하가 부른 각기 다른 `봄비'라는 노래가 뇌리를 스칩니다.

`이슬비 내리는 길을 걸으며 봄비에 젖어서 길을 걸으며/ 나 혼자 쓸쓸히 빗방울소리에 마음을 달래도/ 외로운 가슴을 달랠 길 없네/ 한없이 적시는 내 눈 위에는 빗방울 떨어져 눈물이 되었나/ … / 봄비 나를 울려주는 봄비/ 언제까지 내리려나 마음마저 울려주네/ 봄비 외로운 가슴을 달랠 길 없네'

`봄비 속에 떠난 사람 봄비 맞으며 돌아왔네/ 그때 그날은 그때 그날은 웃으면서 헤어졌는데/ 오늘 이 시간 오늘 이 시간 너무나 아쉬워 서로가 울면서 창밖을 보네/ … / 봄비가 되어 돌아온 사람 비가 되어 가슴 적시네'

공교롭게도 두 가수가 모두 불운에 우는 비운의 가수여서 가슴이 저밉니다.

대자연의 봄비는 축복인데 인간사의 봄비는 그렇지 않나 봅니다.

그럼에도 나는 그대의 봄비이고 싶습니다.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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