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격리실(2)
삶과 죽음의 격리실(2)
  • 윤인기 두성기업 대표이사
  • 승인 2022.03.15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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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윤인기 두성기업 대표이사
윤인기 두성기업 대표이사

 

할 수 있는 건 기도뿐이었다. 27년 전 중학생 때였다. 비가 많이 오던 날이었다. 그때도 갑자기 쓰러지신 할머니가 응급차로 이송되는 걸 보고 겁이 났었다. 아무 생각 없이 성당으로 달려가 성모상 앞에 무릎 꿇고 간절히 기도했다. 내 삶의 절반을 드릴 테니 할머니를 살려달라고 울면서 애원했다. 차가운 빗줄기 사이 여린 얼굴 위로 흐르던 뜨거운 눈물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게 할머니께서 병세에서 회복하시고 올해로 97세가 되셨다. 기도의 바람보다 17년을 건강하게 더 사셨지만 지금 속절없이 절박한 기도를 반복하고 있다.

올해 초 명절에 증손녀들 세배를 받으셨을 때만 해도 이런 병원생활은 예상할 수 없었는데. 마음속으로 100세까지는 거뜬히 사실 거라고 믿었던 게 지금으로서는 마음이 아프다.

병원에 들어오셔서부터는 아무 것도 안 먹으면 하루빨리 하늘나라로 가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하셨는지 식음을 끊으셨다고 한다. 사랑하고 믿음직한 손자 품에서 떠났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신다. 설령 심장이 멈추더라도 심폐소생술을 하지 말라고 하신다. 내 눈물이 조용한 격리실을 가득 채운다.

철이 들면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이 `나에게 솔직해지자'다. 매 순간 어떤 상황에서도 나에게 숨김없고 후회 없이 선택하고 표현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이는 타인에게도 마찬가지다. 본인의 의사를 왜곡 없이 담백하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인생사 최고의 상수는 `정공법'이다.

할머니께서 후회가 남을만한 것들을 혹여나 앞으로 만나지 못하는 이들에게 영상으로 남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몇몇 이들에게 미안함이 남으신가 보다. 백번 천번 이해된다. 그게 우리의 삶이고 섭리라고 생각된다. 이보다 더 진심 어린 마음은 없을 거다.

성심으로 용서를 빌었으니 남은 건 받은 사람의 몫이다. 왜인지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할머니께서는 “나 때문에 울지마”라고 하시지만 노력해도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울고 싶으면 그냥 우는 거라 치부한다.

눈물이 이 작은 공간을 가득 채워 글이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정처 없이 흐르고 있다. 영원한 건 없다.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었음을 뜻하는 불혹의 나이다. 42년 내 삶을 돌이켜보는 의미 깊고 소중한 순간이다.

신영복의 담론에 꽃은 누군가의 찬탄을 받으려고 피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아름다움을 위해서 피는 것도 아니다. 빛과 향기를 발하는 것은 나비를 부르기 위해서이다. 오로지 열매를 위한 것이다. 시들어서 더 이상 꽃이 아니라 하지만 그 자리에 남아서 자라는 열매를 조금이라도 더 보호하려는 모정(母情)이다.

바쁜 일상으로의 복귀로 그렇게 천천히 잊고 잊힐 것이다. 인생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 생각한다. 가치 있는 삶은 무엇인가. 죽으면 영원히 갇힐 좁은 공간 숨 쉬는 한 스스로 가두지 말자.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가 한 말이 떠오른다. 감옥은 감옥 바깥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들은 감옥에 갇혀 있지 않다는 착각을 주기 위한 정치적 공간이라는 역설적 진리이다. 위선과 위악의 베일을 걷어내자.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는 우매한 삶을 버리자. 지금껏 그랬듯 날개를 활짝 펴고 넓은 세상을 마음껏 누비자.

할머니께 받은 가장 큰 유산은 신앙이다. 신앙 안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세상에 도전하며 나누는 기쁨으로 인생을 아름답게 살아가자. 삶과 죽음의 코로나 격리실에서의 일주일은 마음속 후회를 덜어내는 시간이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가슴에 사무치는 세 글자 `할머니'. 내 첫 사랑,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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