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도 단백질이 필요할까
식물도 단백질이 필요할까
  • 우래제 전 중등교사
  • 승인 2022.03.09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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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들려주는 과학이야기
우래제 전 중등교사
우래제 전 중등교사

 

해마다 나의 농사는 뒷산의 솔밭에서 솔잎을 긁어모으는 일에서 시작된다.

시골집 마당 언덕에 심어놓은 스무 그루 남짓의 블루베리에 깔아 주기 위해서다. 이론상 블루베리에 가장 적합한 토양인 피트머스를 구입해 심어야 한다. 그러나 블루베리 전업 농사꾼도 아닌 이상 굳이 비싼 것을 쓸 필요가 없어서 대체 재료를 찾던 중 솔잎 부식물이 괜찮다는 정보를 얻었다.

우선 솔잎 부식물이 산성으로 블루베리에 적합한 토양이다. 지표에 덮어주면 습도, 온도를 적당히 유지시켜 주며 솔잎의 타감작용(한 생물이 다른 생물들의 성장, 생존, 생식에 영향을 주는 생화학물질을 만들어내는 현상)으로 잡초가 잘 자라지 못하게 하는 일종의 제초제 역할을 하니 좋은 재료다. 몇 부대 긁어 블루베리 사이에 깔다 보니 두더지가 생각났다.

보통 두더지는 땅속에서 굴을 파고 다니면서 달팽이, 지네, 지렁이, 곤충의 유충 등을 잡아먹으며 산다. 대부분 땅속 생활을 하는 데 먹이활동을 하기 위해 지표 근처를 헤집는다. 앞다리가 크고 긴 발톱이 있어 땅파기 선수다. 이놈이 지나간 자리의 농작물은 여지없이 말라죽으니 농사꾼들이 좋아할 리 없다. 그렇다고 진동으로 천적이 다가옴을 느끼고 미리 달아나기에 잡기도 어렵다. 손쉬운 방법은 토양살충제를 써서 두더지 먹이가 살 수 없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렇다고 무턱대고 살충제를 많이 사용하기도 싫다. 할 수 없이 두더지 덫을 구입했다. 두더지가 지나갈 만한 곳을 예상해서 덫을 설치하고 기다렸다. 그런데 두더지는 덫을 잘도 피해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두더지 한 마리가 죽어 마당에 놓였다. 덫에 걸린 것도 아니고 약을 친 일도 없는데 어찌 된 일인가? 시골집 주변에 들고양이가 많은데 이놈들 소행으로 짐작된다. 두더지는 드물게 땅 위에 나오기도 하는데 이때 고양이에게 잡힌 것으로 추론할 수밖에 다른 가능성은 거의 없다. 문득 어렸을 적에 두더지 한 마리 잡아 들고 오신 아버님이 장작불에 구워서 먹었던 생각이 난다. 한방이나 민간요법에서는 약용으로 사용한다던데 어떻게 할까? 구워볼까? 망설이다 그냥 묻어 주기로 했다. 블루베리 나무 아래에.

두더지 묻어 주고 몇 달이 지나서 블루베리가 잘 익었다. 그런데 한 나무의 열매가 유난히 크고 맛있다. 게다가 새로 나온 가지도 굵고 다른 나무보다 아주 잘 자랐다. 왜 그럴까? 과학의 시작은 의문을 갖는 것이다. 다른 나무와 어떤 조건이 달랐을까? 아! 두더지를 묻어 놓은 나무구나. 그렇다면 두더지의 살과 뼈가 블루베리의 성장과 열매에 영향을 주었다는 말이 된다. 그러면 `식물 생장(블루베리)에 단백질(두더지 살)이 필요할 것이다.'라는 가정을 세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과학자라면 그다음 할 일이 이 가정을 증명할 실험 설계를 하고 이 가설을 증명해야겠지?

대학생 시절에 포항의 보경사에 갔었다. 그때 만난 스님이 “사람이 죽어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은, 태평양 바다에 빠진 바늘 찾기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말씀을 들려 주셨다. 두더지가 죽어 블루베리 열매가 되고, 그 열매를 먹은 내 몸의 일부가 되었으니 물질은 돌고 도는 것. 그렇게 돌고 돌아 사람이 다시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어려운 일. 하지만 물질순환은 사실. 불교의 윤회설이나 과학의 질량 보존의 법칙이나 다를 게 뭐가 있을까? 물질이야 그렇다고 하여도 내 영혼(정신)은 무엇으로 되어 있을까? 그것도 윤회할까? 두더지 덕분에 깊은 생각에 잠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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