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당한 천사
부상당한 천사
  • 티안 라폼므현대미술관 미디어아트작가
  • 승인 2022.03.09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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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티안 라폼므현대미술관 미디어아트작가
티안 라폼므현대미술관 미디어아트작가

 

2022년 오늘, TV와 트위터를 통해 전쟁을 실시간으로 보게 될줄은 몰랐다. 영국에 위치한 세계적인 NFT 플랫폼인 `노운오리진'에 필자가 소속되어 있으며 일부 우크라이나 작가들도 최근까지 열심히 활동 중이었다. 서로의 작품에 좋아요를 누르고 간단한 작품 피드백을 공유하며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지난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활동 중인 몇몇 작가의 트윗에 러시아 미사일 공습 영상이 올라올 때까지만 해도 모두가 믿지 못하는 상황이었으며 하루 이틀 내에 해결되리라 희망했었다. 필자뿐만 아니라 노운오리진의 많은 작가도 서로 소식을 전하며 하루하루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벌써 10여 일이 지나면서 키이우의 작가로부터 더 이상 트윗이 올라오지 않는다. 매일 매일 뉴스를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 소식을 접하면서 더 이상 나로서는 아름다운 작품을 작업하기가 어렵다. 그동안 우리의 삶과 인간에 대한 희망으로 작업을 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아름다움을 포기하고 가장 슬프고, 잔혹하며, 분노에 찬 그림을 그리게 된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우주보다 귀한 어린 생명이 하나하나 쓰러져 나가고,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몸과 마음을 다치며 지금 이 순간, 전쟁 포화의 공포 속에 떨고 있다. 필자가 이번 달까지 마무리해야 할 작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 며칠은 작업 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러다 오늘 문득 생각난 그림 한 점이 있다. 대부분 그림을 보는 순간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그림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그림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것들이 있다. 반면 어떤 그림은 그 순간에 나를 사로잡지 못하지만, 오랫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그림이 있다. 바로 그 그림 한 점이 떠올랐다. 10여 년 전 그림 에세이 작업을 할 당시 작업실에 처박혀 자료 조사를 하던 중 발견한 `부상당한 천사'. 핀란드의 국민 화가 후고 짐베르크(1873~1917)의 걸작 `부상당한 천사'는 그림을 본 순간 잊혀지지 않다가 지난 10여 년간 필자에게서 잊혀진듯한 그림이었다.

부상당한 천사는 핀란드 민족성을 상징하며 2006년 핀란드 `국가 그림'에 선정되었다. 이 그림 속에는 두 소년이 천사를 들것에 싣고 어디론가 데려가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하얀 옷을 입은 맨발의 천사는 치명적인 부상으로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는 듯 몸을 앞으로 구부린 채 힘겹게 버티고 있다. 천사의 두 눈은 흰 스카프로 동여맸고 왼쪽 날개 끝 부분이 찢어졌으며, 흰 날개는 핏방울로 얼룩져 있다. 그림을 본 첫 느낌은 절망이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꺾여진 날개 아래 꽃을 꼭 움켜쥔 천사의 손과 들판에 핀 꽃들이 보인다. 서민들이 부상당한 천사를 보호하고 힘들어도 희망을 놓지 않겠다는 치유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핀란드는 수 세기 동안 스웨덴과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고 오랜 전쟁으로 인해 끔찍한 학살과 고문으로 국민이 많은 고통과 슬픔을 겪었다. 핀란드 국민 화가 후고 짐베르크의 `부상당한 천사'는 잔인한 폭력과 전쟁으로 희생된 무고한 영혼들을 상징하며 과거의 고통과 상처를 치유하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았다. 그림 속 들판에 핀 꽃들과 천사가 손에 쥔 꽃은 평화에 대한 희망일 것이다. 필자는 오늘도 트윗을 통해 우크라이나 작가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금, 그렇다. 희망을 생각하며 우리는 그저 살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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