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이 말이 되는 순간
사슴이 말이 되는 순간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22.03.08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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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봄이다. 화단에는 벌써 복수초 꽃이 노란 꽃망울을 활짝 터트렸고, 수선화와 튤립도 슬그머니 머리를 땅위로 내밀었다. 이렇게 봄을 알리는 초록 생명들의 수고를 두 팔 벌려 반겨야 함에도 차마 그럴 수가 없다.

나흘 전,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에서 시작한 산불이 아직도 잡히지 않고 있다. 방화범은 다름 아닌 동네 주민이었다. 동네 주민들이 여러 해 동안 자신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집을 비롯해 빈집 등을 돌아다니며 토치로 불을 질렀다. 건조한 날씨와 강풍 탓에 산불은 순식간에 산등성이를 타고 이웃 도시까지 옮겨 화마가 되어 활개를 치고 있다. 하루아침에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집을 잃고 가축을 잃은 주민들의 무너지는 심정은 무엇으로도 설명이 될 수 없으리라.

세상이 어수선한 것은 강원도 산불만이 아니다. 이틀 후면 치러질 대통령 선거도 한자리를 차지한다. 방송에서는 상대 후보를 비방하는 토론과 유세전에 대한 이야기로 연일 시끄럽다. 그런데 대통령 후보에 대한 비방은 대선 토론에서만 있는 게 아니다. 일반 시민들도 지인을 만나면 자신이 지지하는 대통령을 옹호하거나 상대편 후보자에 대한 비방을 일삼는다. 그러다 보니 서로 언쟁이 높아지고 좋았던 사이까지 위태롭다. 세상의 사람들은 다양한 삶을 살아간다. 그런데 어찌 자신의 생각과 같아야 한단 말인가. 자신과 같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을 받는 세상이다. 서로의 의견을 존중해주고 이해를 하려는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필요한 때다.

지록위마(指鹿爲馬), 이 말은 그림속의 사슴을 말이라고 한 데서 유래한다. 이는 윗사람을 농락하고 함부로 권세를 부리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는 《사기(史記) <진이세본기(秦二世本紀)>》에 전한다.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은 순행 도중에 중병에 걸리고 만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고 환관(宦官) 조고(趙高)에게 명하여 큰아들 부소(扶蘇)에게 주는 편지를 만들게 하였다. 큰아들 부소에게 자신의 장례를 주관케 하여 왕위를 물려받으라는 유서였다. 하지만 권력욕과 욕망으로 가득한 조고는 진시황제의 유언을 조작해, 큰아들 부소는 자결을 하게 만들고, 어린 `호해'로 하여금 황위를 잇게 한다. 이후 조고는 사슴이 그려진 그림을 명마가 그려진 그림이라며 왕에게 바친다. 왕은 당연히 그게 말이지 사슴이냐고 하자 조고의 눈치를 살피던 신하들은 그림속의 사슴은 말이라며 조고에게 맞장구를 쳐준다. 혹여 `말'이라고 직언한 신하는 조고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만다. 환관 조고는 자신의 편임을 확인하기 위해 신하들에게 시험을 했던 것이다.

얼마나 왕이 어리석었으면 그 지경까지 갔던 것일까. 사실 호해는 조고가 내민 부당하고 부정한 손을 덥석 잡은 왕이었다. 조고에 의해 왕위를 박탈당하리라는 것 또한 불을 보듯 뻔 한 사실임에도 호해는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욕심이 눈을 가리면 닥쳐올 앞날은 보이지 않는 법이다. 세상은 자신의 그릇 크기에 따라 크거나 작게 담겨진다. 권력욕이 강한 사람일수록 주위를 살피기보다는 자신의 이익만을 우선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면 피해를 보는 것은 정작 힘없는 국민이 된다.

요즘 대선을 보면 후보자들의 말 한마디에 판세가 요동을 친다. 진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후보자들은 서로가 자신들의 말이 진실이라고 오늘도 목이 터져라 소리 높여 외친다. 유권자는 공정한 심판관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평정심이 중요하다. 그리고 진실을 볼 수 있는 매의 눈도 지녀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말 한마디에 휘둘리지 않도록 마음을 단단히 붙잡는 일이다.

이 봄, 부디 화마로 몸과 마음을 다친 산불 이재민들에게도 따뜻한 봄이 찾아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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