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격리실(1)
삶과 죽음의 격리실(1)
  • 윤인기 두성기업 대표이사
  • 승인 2022.03.08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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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윤인기 두성기업 대표이사
윤인기 두성기업 대표이사

 

누구에게나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죽음과 함께 산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인간은 망각을 일삼기에 죽음을 인지하지 못하며 살아간다. 유희에 빠져 가무를 즐기고 의미 없는 시간에 삶을 낭비한다.

그간 몇 년을 `내일 죽으면 지금 뭘 하지'라는 자문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그렇게 매일, 매순간 가치 있는 의미를 찾고 있다. 신이 주는 가장 큰 `벌'은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데려가는 것이다. 죽음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나 되묻는다.

할머니는 “열심히 살고 죄짓지 마라. 말을 아껴라, 남 욕하지 마라, 내 삶에 가장 큰 후회다, 갈 땐 이렇게 허무하다. 만나면 헤어지는 게 인생이다”라고 유언처럼 말씀하신다.

할머니는 지금 소변호스를 차고 계신다. 호스는 요도로 직접 연결된다. 담즙이 나오는 줄도 차고 계신다. 이는 배를 뚫어 연결되어 있다. 걸쭉하고 짙은 군청색의 담즙 줄은 할머니의 위장 소화를 무력하게 하고 있다. 소변은 3~4시간에 한 번씩, 담즙은 하루 2번 정도 비워야 한다.

오랫동안 집에서 요양 생활을 하시던 할머니는 영양실조와 대상포진으로 고생하시다 최근 코로나19에 확진돼 병원에 입원하셨다. 소식을 듣고 병동으로 찾아갔지만 방역수칙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PCR 검사 후 다음날 병실로 들어가 할머니를 볼 수 있었다. 377호 긴 복도의 가장 끝 왼쪽 방이었다. 환하고 밝게 켜져 있는 방에 할머니가 보였다. 코로나 격리실을 들어가려면 두 개의 문을 다시 차례로 지나야 한다. 방에 들어서자 할머니께서 밝게 웃어주셨다. 그렇게 밝은 할머니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어 행복했다. 말문이 트인 할머니께 폭풍 수다를 쏟아부었다. 다시 할머니와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니. 행복이었다.

할머니는 나에게 가장 특별한 존재다. 유착을 배울 시기 할머니께서 마당이 있던 집으로 잠시 오셨었다. 만남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일어나 떠나신다고 했다. 가지 말라고 형이랑 같이 1시간을 떼쓰고 울었던 것 같다. 술수에 능한 할머니는 머리가 길다며 이발을 하고 오라고 용돈을 주셨다. 기다리겠다고 약속하셨지만 그 사이 작은 고모댁인 산척으로 가셨다. 고모는 산척중학교 교사였다. 어린 나로서는 그리운 할머니를 찾아갈 수가 없었다. 할머니는 타고난 밀당의 고수였다.

고모가 청주로 발령을 받아 수동으로 이사를 왔다. 할머니는 수동 집에 계셨다. 이제는 어엿한 선생이 된 사촌 동생의 육아를 도와주셨다. 당시 주말이 되면 언제나 할머니를 찾아갔고 반갑게 맞아 주셨다. 내 나이 올해 42살, 벌써 약 27년 전일이다.

당시는 이해가 안 되고 거북한 이야기였지만 할머니는 엄마 험담을 많이 하셨다. 지금은 백 번 이해되고 어떤 상황인지 충분히 안다. 두 분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방식으로 인생을 풀어가는지 대부분 파악되었다. 허나 고부간의 갈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있을 수밖에 없다. 그때는 엄마에게 멀어져야겠다는 생각과 사춘기 반감이 들었다. 그만큼 할머니를 믿었고 좋아했다. 아니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녀는 내 삶의 첫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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