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여자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여자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8.08 23: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 혜 식<수필가>

'인간은 내용보다 외모로 평가한다. 누구나 눈을 갖고 있지만 통찰력을 갖긴 힘들다'라는 이탈리아의 어느 정치학자의 말이 딱 맞는 성 싶다. 사람들은 도무지 내 말을 곧이듣지 않으려 한다. 나는 사실 그대로를 말하련만 그들은 늘 말끝에 "정말"이란 물음을 잊지 않는다. 도대체 남들이 나의 진실을 외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봐도 짚히는 게 없다.

날보고 어쩌란 말인가. 진실을 말하지 말고 자기네들 잣대에 맞춰 거짓말을 능청맞게 하란 말인가. 때론 내 말을 믿어주지 않아 답답하다.

며칠 전 일만 해도 그렇다. 친한 친구한테 한통의 전화가 왔다. 서울에서 발행하는 모 신문사에 게재된 나의 글과 사진을 우연히 서점에서 보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대뜸 하는 말,

"너 왜 독자들한테 사기 치냐 혹시 네 딸 사진 보낸 것 아냐"라며 우스갯말을 한다. 나는 그녀의 말에 시내에서 급히 찍은 값싼 즉석 사진이라고 했다. 그러다보니 포토숖인가 뭔가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새 아파트로 이사했을 때 일이다. 어느 지인은 새집으로 이사하며 묵은 살림을 새살림으로 바꿔 좋겠다고 한다. 그 말에 난 숟가락 하나도 새로 사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심플한 것을 선호할 내가 케케묵은 살림을 끌어안고 살 리 만무라는 것이다.

나는 평소 삶의 철학이 매사에 절약하자이다. 소비를 미덕으로 아는 사람들 눈엔 그런 내가 매우 궁상맞게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멀쩡한 물건들을 버릴 필요가 있을까.

언젠가 친구 집을 방문하며 된장을 퍼갖고 간 적 있다. 그 된장을 내가 직접 담갔다고 하자 친구 눈이 휘둥그레졌다. 손끝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을 법한 내가 의외라고 한다. 또한 친목 모임에 내가 빚은 탁주를 몇 병들고 나갔다. 탁주 맛을 본 어느 남자 회원이 진짜 내가 빚은 거냐며 고개를 갸웃했다.

사람들이 나를 못 믿는 점이 또 있다. 몸살이라도 나 몸이 아프다고 하면 남들은 내가 엄살떤다고 한다. 나는 1년 내내 감기 한 번 안 걸릴 사람처럼 튼튼해 보인단다. 이런 사정이니 나는 이래저래 본의 아니게 감쪽같이 남의 눈을 가리는 거짓말쟁이가 돼 버린 것이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다. 내가 공식석상에서 심중에 있는 생각을 스스럼없이 꺼내면 너무 바른말을 한다는 충고를 주위에서 한다. 보고 듣고 느낀 소회를 숨김없이 말했을 뿐인데 에둘러 말하지 않았다고 비난까지 해댄다. 그때는 모두들 내가 한말을 전적으로 믿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어인일일까. 나는 이런 이 중 시각이 한편으론 참으로 다행이라고까지 여긴다.

하느님은 내게 진실을 말할 용기를 주셨음에 감사드려야 할까보다. 위에 열거한 사실들을 비춰 볼 경우, 내가 진실을 벗어나 맘에 없는 말까지 번지르르하게 잘한다면 그야말로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여인'으로 남에 눈에 비치지 않을까.

하지만 솔직히 말하는 것을 가급적 피해야 할 일이다.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 남에게 아부를 잘하는 사람이 사회적응도 잘하고 출세도 빠르다고 하지 않은가.

본연의 내 모습은 간곳 없고 남의 눈에 내 자신이 마냥 딴사람으로 포장돼 보이는 점이 참으로 마뜩찮다. 하지만 어찌보면 그런 면도 하느님이 내게 내려주신 특별한 혜택인 듯싶다. 남 앞에 그럴듯하게 보이려고 애써 몇 겹의 과대포장까지 하는 세태 아닌가. 가령 나는 끼니를 사흘 굶어도 남들은 배부른 사람으로 볼 터이니 참으로 이런 면에선 부모님께 감사해야 할 일이다. 속보다 겉을 중시하는 세상에 살아남을 수 있는 선천적인 능력을 내게 부여해 주셨잖은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