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장에서 멈추면 안 될 열기
투표장에서 멈추면 안 될 열기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2.03.06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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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율이 36.93%로 집계됐다. 역대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이틀 후에 나올 총 투표율도 역대급이 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결함 투성이 후보들이 등장해 상호 비방으로 일관하면서 최악의 비호감 선거가 되고 있다는 세간의 탄식이 무색해졌다. 뽑을 후보가 마땅찮다는 중론이 형성되면 투표율은 떨어지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결과는 거꾸로 나왔다. 전대미문의 불량품이 출시된 시장이 호황을 누리는 격이다.

이런 난국일수록 지혜를 짜내 최악의 대통령을 피해야 한다는 성숙한 시민정신이 발현된 결과로 읽고 싶다. 그러나 한편으론 정권 교체와 사수로 나뉜 민심의 격돌이 사생결단의 수위로 치닫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높아진 투표율 만큼 선거 후 봉합해야 할 갈등의 골이 깊어질 것 같고, 당선 가능성이 높은 유력 후보들에게서 패자를 보듬을 너른 가슴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박빙의 차이로 선두를 다투는 두 후보는 각각 플랭클린 루즈벨트와 윈스턴 처칠을 롤모델로 삼고 있다고 한다.

루즈벨트는 미국을 대공황의 나락에서 구해냈고, 처칠은 2차대전에서 국민 결속을 바탕으로 독일의 총공세를 막아내 영국을 승전국으로 이끌었다.

탁월한 리더십과 전략으로 나라에 닥친 대재앙을 극복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두 후보가 루즈벨트와 처칠을 본받기로 한 이유도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이 국난에 준할 정도로 녹록지 않다는 인식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실제 우리는 유례없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우선 정점으로 치닫는 코로나 사태의 안정적인 극복이 차기 대통령에게 주어진 1차 과제일 터이다. 고통받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등 서민층은 인내의 한계에 도달해 폭발하기 직전이다. 산적한 다른 난제들도 코로나 못지않게 심각하다. 계층과 세대, 정파 간 갈등은 어느 때보다 첨예하다. 대통령이 통합과 탕평의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 없는 사안이다. 정치판에서 실종된 협치부터 되살려야 한다. 양극화는 깊어가지만 불로소득을 잡아줄 부동산 정책은 표류하고 있다. 영양실조에 걸려 말라죽어가는 지방을 회생시킬 방안도 화급하다. 외교 역량도 절실한 시점이다. 미·중 갈등에 이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격화한 러시아와 서방의 대립은 교역으로 먹고사는 우리에게 외교의 대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때를 가지지않고 미사일을 쏘아올려 안보를 위협하는 북한과의 관계 재정립도 난제 중의 난제로 꼽힌다.

모두 새 대통령이 풀어야 할 숙제들이다. 향후 5년간 대한민국을 이끌 가능성이 큰 후보들이 걸출한 리더십으로 국난을 극복한 지도자들을 거울로 삼기로 했다니 다행스러운 일이긴 하다. 플랭클린 루즈벨트는 기득권층으로부터 사회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아가면서도 부실 은행 수천개를 강제 구조조정해 금융시장에 돈이 돌게 했다. 빈민 구제를 위한 사회보장제도도 과감하게 추진했다. 처칠은 나라를 전란에 빠지게 한다는 반전 협상파의 공격을 받았지만 야당을 두루 아우른 통합내각을 구성해 국력을 결집했다.

선거가 이틀 남았다. 이젠 유권자의 시간이다. 앞서 우리가 직면한 위기적 징후들을 줄줄이 언급했듯이 우리는 기표소에 들어가 붓뚜껑 한번 놀리고는 유권자 책무를 다했다고 자위해도 될 정도로 한가로운 처지가 아니다. 다음 대통령이 루즈벨트나 처칠이 될 공산도 높아보이지 않는다. 새 대통령이 그들의 흉내라도 내도록 하려면 유권자들이 달라져야 한다. 대통령이 누가 되든 민의를 거스르면 회초리를 들겠다는 각오부터 다져야 한다. 유권자의 참여 열기가 투표장에서 멈춰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두 후보 모두 강조한 `통합정부' 같은 약속들을 기억하고 다그치고 재촉해야 한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맹종의 팔로워십으로는 요원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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