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번째 삼일절 아침
103번째 삼일절 아침
  • 장민정 시인
  • 승인 2022.03.02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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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장민정 시인
장민정 시인

 

나는 독립유공자 손자녀이다. 독립운동을 하시다 감옥에 투옥되시고 손톱발톱이 다 빠지도록 고통을 받아 목숨이 경각에 달했을 때 병보석으로 나오신 우리 할아버지를 내심 존경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럼으로 광복절이나 삼일절이 되면 나름 경건하게 할아버지를 추모하기도 한다.

103번째라는 삼일절 아침. 카톡! 소리가 울려 핸드폰을 켰더니 뜬금없이, 아니, 미처 생각지 못했던 인도 아미타브 가이드의 문자가 떠 있다. 3년 전 딸과 함께 인도를 여행할 때 우리를 안내해준 인도 사람이다.

그는 한국에 유학했던 사람이라 우리 말을 유창하게 구사하는 관계로 나의 인도여행을 한층 알차고 유익하게 해주어 고마웠던 사람, 코로나 때문에 좋아하던 여행도 못하고 어떻게 지내냐는, 뜻밖의 안부에 새록새록 인도여행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새벽에 갠지스강에 도착해서 해맞이 의식을 치를 때였다. 드넓은 강은 바람도 없이 잔잔했고 조용해서 멀리 뿌연 안개 사이로 떠오르는 해는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게 했고 경건하게 소원을 빌고 싶게 했다. 아미타브가 건네준 연꽃 접시에 촛불을 밝혀 강물에 띄우고 조금씩 흔들리는 뱃머리에 서서 나는 나의 시 <새해의 기도>를 낭송했다.

내 시를 이해했는지 안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때부터 아미타브는 부쩍 친근하게 나를 대했다. poem mother, poem mother 하면서 인도의 많은 것을 소개하려 애쓰던 고마운 가이드, 갠지스강을 그들은 <강가>라 부른다든지, 다람쥐는 <람쥐>이고, 아버지는 <마부지>, 엄마는 <엄마>라며 두 나라의 비슷한 말을 알려주면서 동질감을 말하는가 하면 인도의 알맞은 기후와 기름진 넓은 땅에 대해서도 자랑은 끝이 없었다.

인도를 더 알고 싶다면 남인도를 다녀와야 한다면서 언제 다시 여행하자고 권하기도 하던 아미타브, 어쩌다 코로나 시국을 만나 우리의 약속은 흐지부지되고 말았음을 다시 생각한다.

갠지스강 강가에서 내가 아미타브에게 물어본 말이 생각난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했듯 인도는 영국이 100년씩이나 통치했는데 그곳 사람들은 영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는 원수처럼 여길 것이다, 생각하고 물어본 것인데 그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놀랍게도 그들은 영국을 미워하거나 저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처님의 나라여서일까? 긍정적인 사고의 극치라 말해야 할까? 영국인은 먹을 것을 찾아온 것이고 가진 것이 많은 그들은 100년 동안 <보시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빼앗긴 것이 아니고 부처님 말씀처럼 배고픈 자들을 먹여 살렸다는 것, 부처님 나라답게 <보시했다는 것>, 자비의 마음만 읽어내라는 것이다.

간디가 맨발로 무저항 운동을 한 기록을 우리는 다 알고 있는데, 간디의 후예들은 자비로운 마음으로 자신들의 프라이드를 어루만지고 있는 것이다. 가진 자의 너그러움으로 포장하는 인도 사람들, 사원 앞에는 아직도 먹을 것을 구하는 인파가 차고 넘칠 터인데, 일본을 대하는 우리의 시선도 이제는 좀 여유를 부려보면 어떨까 싶다. 100년씩이나 영국의 지배 아래 있던 인도는 <보시했다> 하고 36년 만에 해방된 우리는 일본의 침략을, 약탈을 두고두고 원망하고 있다. 생각에 따라 천당이 되고 지옥이 되는 결과에 대해 새삼스럽게 잣대를 들이대는 아침이다. 선진국이 된 우리, 이제는 통 큰 생각으로 스스로를 돌아볼 때가 된 것 같다. 못 살아서, 악에 받쳐서 우리나라를 침략한 일본이라고 불쌍하게 여길 수 있을까? 너그럽게 내려다볼 수 있는 때가 빨리 왔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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