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청년에게
이 땅의 청년에게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2.03.01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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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인턴으로 함께 일했던 P군이 세 달 만에 찾아왔다. 중견 건설회사 입사시험에 합격해 3월부터, 그러니까 바로 오늘부터 출근하게 되었다며 반가운 소식을 전한다. 그동안 얼마나 마음 졸였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짠하다.

3월, 새달이 되면서 정치의 계절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이제 남은 날은 딱 7일. 그 절체절명의 시간에 이 땅의 청년들은 여전히 혼돈의 한복판에 있다.

길지 않은 시간동안 P군과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정식으로 세상의 문을 여는 시작을 하였거나 아직 그렇지 못한 이 땅의 청년들에게 고해하는 심정을 지우지 못한다.

기성세대인 나는, 그리고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지금/여기'는 청년들에게 어떤 희망을 줄 수 있는가. 부끄러움은 살필 겨를이 없고 상식을 잃어버린 탐욕이 지배하는 세상. 공정과 능력주의라는 가면으로 정의를 참칭하면서 권력을 독점해온 기득권의 세상.

그러므로 이 땅의 청년들이 `영끌'하면서 부동산 열풍에 휩쓸리고 알지도 못하는 주식에 휘말리며, 가상화폐에 몰입하는 지경을 그저 탓하기만 할 수는 없다. 이 땅에서 더 이상 가능성은 약속되지 않고, 희망은 더 큰 절망을 만드는 수렁에 불과하다는 그들의 황폐함에 대한 책임은 다분히 기득권인 어른들에게 있다.

그동안의 어른들은 노동의 소중한 가치와 성실한 창의력으로도 `나'를 지키고 바로 세울 수 있는 세상을 남겨두지 못했다. 기득권의 철옹성을 쌓은 어른들은 지금도 스스로를 고민하지 않으며, `시대 전환'이거나 청년의 미래에 대한 `대안적 질서'를 무시하는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른들은 그동안, 아니 지금까지도 역사의 교훈을 반면교사로 삼지 못하고 있으며, `나'를 `우리'로 승화시키는데 인색해 왔다.

청년은 지원 대상으로만 여겨 스스로의 주체로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오히려 방해해 왔으며, 오히려 지원금 사냥꾼과 그렇지 못한 청년들 사이에 두터운 편 가르기를 만들고 있다. 서열과 차별은 점점 더 견고해지면서 신분제와 다름없는 포기와 좌절로 사람을 갈라놓고 있으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평등은 출신 성분과 실력에 따라 구분되면서 더 이상 지킬 수 없는 지경으로 청년들을 내몰고 있다.

고백하건데 `지금'까지의 `여기'는 `토강여유(吐剛茹柔)의 세상.

단단한 것은 삼키고 부드러운 것은 뱉어내며, 강한 자를 두려워하며 빌붙어 살고 약한 사람을 업신여기고 함부로 대하며 연대와 협력이 말살시키는 퇴화의 길을 멈추게 할 초인은 누구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청년에게 이 땅의 희망을 건다.

다만 그들이 `내 집' 한 채에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부동산에 집착하는 소유의 탐욕 대신 공유를 통해 주거(住居)의 안락함을 이룰 수 있는 세상을 기다린다. 가상화폐이거나 주식 등의 시세차익에 골몰하면서 금융자본의 불로소득에 몰두하는 대신 성실하고 창의적인 노동을 통해 인간의 가치가 존중되는 세상을 반드시 만들 수 있는 청년의 의지를 믿고 싶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빨라지고 있는 기후위기와 초고령 사회로의 진입에도 당당할 수 있는 `시대전환'에 `대안적 질서'를 만들어야 하는 청년세대의 어깨가 무겁다.

그러므로 혐오와 조롱, 젠더에 대한 집착과 대립으로 청년을 갈라치기하는 정치는 청년다움이 아니며 청년세대 서로를 적으로 만들어 스스로 우뚝 서는 주체성을 말살하려는 기득권의 간계와 다를 것 없다.

그러므로 이 땅의 청년이여! 차라리 노동의 건강한 현장에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를 걷어치우지 못하는 자본과 기득권의 모든 탐욕을 적으로 삼아야 한다. 태안 화력발전소의 김용균, 평택항의 이선호, 컵라면조차 미처 먹지 못하고 지하철 구의역에서 숨진 김군 등 값진 노동의 순간에 희생된 숱한 영혼은 그대들과 같은 푸른 청년들이다.

그러므로 분노하고 결사(結社)하여, `나'아닌 `우리'가 되어 공통의 인식과 행동을 이어가는 청년의 힘을 믿는다. 흩어지지 않고 굳게 뭉친 그대들의 푸른 어깨에서 닫혀있는 세상의 모든 가능성은, 그리고 희망은 열린다. 청년이 정치를, 투표를 해야 하는 진리는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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