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전사여!
탈레반 전사여!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8.07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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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순 주<청주상당경찰서>


요즈음 뉴스는 온통 탈레반에 억류된 한국의 젊은이들 뉴스다. 국민들 모두가 자신이나 나의 가족이 억류되어 언제 죽임을 당할지 모른다는 현실에 직면한다면 마음이 과연 어떠할까라는 초조감에 치를 떨기도 하고 시시각각 흘러나오는 뉴스에 귀를 세우고 있지만, 이 사건을 가지고 외국 매스컴에 보도된 것처럼 한국 국민이 모두 슬픔에 빠져 있을까

지금 대한민국 사람치고 이 사건에 관심이야 가겠지만, 어떤 야당은 서로 딴 나라당인양 한사람은 아무리 한방을 쳐대 봐라 나는 쓰러지지 않는다고 외치고 다니며, 또 한 사람은 입에 거품을 물고 자신만 세상을 도덕적으로 살은 척 뒷다리잡기를 연일 계속하여 콩가루 당이 되어가고, 여권이라고 말하고 있는 어느 당은 이것저것 뒤섞어 미숫가루당을 만들어 국민들을 구원하겠다며 전혀 관심도 없는 국민들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초등학교 웅변대회 같은 흉내를 내는 것을 보면 과연 대한민국 사람들이 슬픔에 잠겨 있을까 한마디로 '아니 올시다'가 분명하다.

하긴 가끔 집안의 어른들이 돌아가실 때 슬픔보다는 누가 왔나 안 왔나를 눈여겨보고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의 안부를 묻는게 고작이란 것을 느끼면서, 슬픔이란 것이 억지로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다. 그래서인지 교통사고로 자식을 잃거나 아내를 잃은 친구의 문상조차도 슬픈 얼굴을 가지고 가지 못해 장례식장에 들어가기 전 얼굴 표정을 살펴보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몇년 전인가 친구한테서 간만에 전화가 왔는데 뜻밖에 아들을 조기 유학 보냈는데 교통사고로 죽었다며 장례식장을 알려 주었다. 그 전화를 받고선 슬퍼할 친구얼굴이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자동차를 운전할 때는 좌우를 살피고 횡단보도를 건널 때도 좌우를 살피라는 전화를 걸었다만 참으로 친구에게 미안할 행동이였다. 살다보면 자식을 먼저 보내는 경우는 허다하다. 유아 사망률이 높던 시절에 살았던 우리의 부모들은 두어살 된 자식을 잃은 경우가 많았고 6·25 한국전쟁과 월남전을 통해서도 생때같은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가 많이 생겼으나 어찌 그 같은 이유에서만일까.

새벽 어렴프시 눈을 떠 TV를 틀으니 또 한명이 피살되었다는 뉴스가 흘러 나왔다. 방송을 보며 피살된 젊은이 보다는 그를 슬퍼할 부모를 생각하니 끔찍하기까지 하다. 과연 그 부모들은 슬픔을 어찌 이겨낼 수 있을까 하나님을 믿으니 마음의 위안을 조금이라도 받을까 아∼ 나라면…, 상상조차 하기싫은 장면이다. 젊은 시절 에이릭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읽고 고민한 적이 있다. 소극적 자유를 얻기 위해 적극적 자유를 잃는다는 의미이긴 하지만, 나는 여기서 '자신의 자유를 얻기 위해 남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 보았다. 탈레반이란 뜻이 배움을 의미한다면 우리의 묘지명에 평생 배움에 있다 간다는 '학생부군 신위'라는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탈레반 전사여! 당신들의 묘비명에 '학생부군신위'라는 영광된 묘비명을 적고자 한다면 제발 자신들의 자유를 얻고자 남의 자유를 억압하지 마라. 그들은 거창한 묘비명을 얻고자 하는 자들이 아니라 당신들처럼 배움을 제일로 여기는 순수하고 착하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단 한번도 남의 나라를 침범하지 않은 대한민국의 아들딸들이다. 더 이상 그들의 부모에게 눈물을 흘리게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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