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치기’와 노동의 가치
‘갈라치기’와 노동의 가치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2.02.22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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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일 년 열두 달 가운데 2월이 가장 짧은 이유는 그만큼 봄이 빨리 왔으면 하는 소망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갑자기 허무하다.

기온은 도대체 오를 기미가 없고, 요 며칠 환한 하늘에서 미친 듯 날리는 눈발을 보면, 겨울은 참 모질다. 언 몸을 풀어 흐르던 시냇물도 다시 꽁꽁 얼어붙었으니 `봄'을 노래하기에 세상은 여태 하 수상하다. 보름도 남지 않은 20대 대선의 숨 가쁜 일정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절대 권력의 대통령중심제를 유지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대통령 선거는 5년마다 치러지는 평가와 반성, 그리고 전진과 희망을 위한 주권 국민의 뚜렷한 `성찰'의 시간이어야 한다.

코로나19의 환난으로 인한 팬데믹의 한 복판에서 치러지는 이번 대선은 특히 국민과 나라의 운명을 가늠하는 변곡점이자 전환점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번 대선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긍정의 힘'이 충만한 가운데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선거로 기능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과정은 그런 기대 자체를 쓸모없게 만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진영논리에 따른 분열과 갈등의 정도를 더욱더 심화시키고 있어 불안하다.

고질적인 당 조직의 목표에도 불구하고 일반 국민의 여론에 따라 후보가 선출된 여당이거나, 국민 여론과는 달리 조직의 힘이 우세하게 작동된 것으로 보이는 야당의 경우를 거론하는 근본 원인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번 대선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공동체 의식을 무너뜨리는 `갈라치기'가 노골적으로 자행된다는 점이다. `갈라치기'는 대체로 불평등의 정점에서 절대 우월의 경제 권력을 놓치지 않겠다는 기득권의 탐욕과 집착으로 만들어 진다.

지난 연말 대기업과 금융권은 막대한 규모의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 많이 번만큼 임직원들과 나누어 쓰는 일을 탓할 수는 없다. 다만 그런 포만감을 누릴 만큼 `지금/여기'의 상황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는 준 사람이나 받은 사람이나 한 번쯤 돌아볼 일 아닌가.

불안한 경제 사정을 극복하기 위해 죽지 못해 선택한 대출은 고스란히 금융권의 실적과 이익으로 남는다. 코로나19의 극복을 위해 방역규칙을 준수하느라 죽을 위기에 내몰리는 소상공인의 극심한 불황과는 달리 금융권은 장사를 잘해 더 많은 성과급 잔치를 벌이는 일은 소설 속에나 나오는 악덕 고리대금업자의 횡포와 다를 게 없다.

대기업에 넘쳐났던 연말 보너스 역시 그 구성원에만 적용되는 일이고, 그 조직 외에서 가타부타 논의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쯤은 우리 모두 알고도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엄청난 성과급에 대해 쌍 나발을 불어대는 것은 인간적이지 않고 사회 공동체적으로도 예의가 없는 것. 그러므로 이 또한 기득권 세력이 능력주의로 위장한 `갈라치기' 아닌가. 그러니 성과급 잔치의 다만 쪼끔이라도 힘겨운 사회와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나누는 염치를 바라는 건 무리한 기대인지 묻고 싶을 뿐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금융과 대기업의 이익 배분이 초래하는 분열과 갈등, 불평등의 심화에 따른 공동체 의식 저해의 획책에는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노동 가치의 무시에서 출발한다. 먹고 살기 위해 출근했던 길이 주검으로 돌아오는 위험한 현실은 엄연한데, 그래도 우리는 매일 매일 노동을 해야 한다.

다만 `손을 써야'하는 동일 조건의 공장 노동에도 불구하고, 정규직이거나 계약직(원청의 경우 계약직은 거의 없으나), 하청 용역회사의 정규직과 또 다른 계약직, 그리고 그나마도 처지가 어려운 신분을 악용해 알바로 내몰리는 노동 사다리의 추락의 폭력적 고용질서의 현실은 대통령 후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일이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했음에도 성과급이 아예 없거나, 쥐꼬리만큼 주면서도 각각 차이가 나는 현실은 사람에 대한 `갈라치기'이자 `노동의 가치'를 무너뜨리는 가장 중요한 생존의 적폐가 아닌가.

`갈라치기'를 응징하고 `노동의 가치'가 진정으로 존중되는 세상. 이번 대선의 맨 앞에 있는 선택 기준이어야 할 것인데, 2월은 아직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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