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렵 전날 이야기
천렵 전날 이야기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8.07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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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에 하얀 뱀딸기꽃이 지더니 어느새 잎사귀 속에 앵두보다 더 붉은 뱀딸기가 동글동글 매달려 있었습니다.

겁 많은 옥희는 정말 뱀이 나타나 딸기를 먹나 은근히 그 앞을 지나칠 때면 신경이 쓰이곤 했죠.

여름방학이 한 보름 지나고 신나는 물놀이도 시들해질 무렵. 옥희는 은근히 대추나무집 숙자가 부러워졌습니다.

여름방학을 시작하자마자 숙자는 오빠와 함께 도시에 사는 친척집으로 놀러갔기 때문이죠. 그러나 옥희는 방학 내내 고추도 따고 가끔 깨밭의 풀도 뽑아야 했습니다.

지난해에 숙자는 "종이인형이 아닌 진짜 사람 같은 생긴 인형을 선물 받았다"며 눈 깜박이는 인형자랑을 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또 뭐라더라 무슨 대공원인가를 갔다 왔다며 개학을 해서도 여름매미처럼 귀가 따갑게 노래를 부를 정도였습니다.

"이번엔 또 뭘 선물 받았을까" 하고 평상에 누워 생각에 잠긴 옥희는 갑자기 숙자가 보고 싶어졌죠.

어제 숙자 어머니가 그러는데 며칠 후면 숙자가 집으로 온다고 해 더 그런가봅니다.

다음날 아침.

어머니는 시커먼 가마솥을 마당에 놓고 짚을 동글동글 뭉쳐 모래 한 주먹을 묻혀 가마솥을 썩썩 닦기 시작합니다.

"엄니, 가마솥은 닦아도 닦아도 숯 검댕인데. 왜 닦어."

"내일 동네에서 천렵 간다고 혀지 않니. 이 솥단지 가져갈라 하는구먼."

천렵이란 말에 옥희의 졸리던 눈이 금세 왕방울만해 집니다. 해마다 동네 사람들 모두 아침 일찍 양지골 근처 강가로 갔었죠.

옥희는 양지골 강가에 꼭 미끄럼틀처럼 생긴 바위에서 미끄럼 타는 것을 좋아했지만, 혼자가면 으스스해 갈 수가 없었죠.

그래서 천렵이란 말에 신이 난 것입니다. 그리고 평소 농사일에 바쁜 부모님과 함께 할 수 없었는데 천렵 때는 하루 종일 부모님과 맘 편히 즐겁게 지낼 수 있어 무엇보다 좋았던 것입니다.

마침 저녁에 숙자도 돌아와 내일 천렵에 같이 갈 수 있어 옥희의 오늘 밤은 더 더디게만 가고 그리고 한없이 설레기도 한 꿈결 같은 여름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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