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메이 고기
호메이 고기
  • 김순남 수필가
  • 승인 2022.02.21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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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순남 수필가
김순남 수필가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단양 장이 서는 날이다.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을 다녀오는 중이다.

걸음이 불편하신 어머니는 승용차에 계시고 찬거리라도 살 겸 시장으로 가려는데 “장에 가믄, 호메이 고기 좀 사 오거라”라고 하셨다. 그래, 맞아 그 생선이 `호메이 고기'라는 다른 이름이 있었지. 어머니는 몇 달 동안 입맛을 잃어 식사를 달갑게 여기지 않고 지내시던 터이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생선이름과 드시고 싶다는 것이 있다니 어찌나 반가운지 장터로 가는 발걸음이 바빠졌다.

오래전 그 시절 내륙의 산촌에서는 다양한 생선을 맛보지 못했다.

짭짤한 자반고등어나 모내기 무렵 한두 번 맛보는 꽁치, 겨울철에 장작개비 같은 동태 정도가 익숙한 생선이다.

양미리는 산촌 도랑에서 보아왔던 미꾸라지와 비슷하나 색깔도 좀 다르고 몸집이 조금 더 커 보였다. 한류성 어류로 동해안에서 겨울철에 많이 잡히는 `양미리'를 예전에 고향 어른들이 호메이 고기라 불러왔다.

짚으로 엮은 생선이 추운 날씨에 꽁꽁 얼어서 기역자로 꺾인 모양이다. 그것을 보고 농가에서 쓰는 호미와 닮아 경상도 방언으로 호메이 고기라 불렀다 한다.

산 넘고 물 건너 동장군 호위를 받으며 내륙의 깊은 곳까지 찾아온 그 바닷고기는 화롯불에 구워 후후 불며 먹는 맛이란 두말할 것도 없지만, 무를 넣고 갖은 양념에 자작하니 졸이면 온 식구가 둘러앉아 머리 맞대고 소박한 행복을 즐길 수 있었다.

단양은 경북과 강원도의 인접 지역이다.

단양군 북동쪽에 자리한 영춘면에는 냇물과 산자락을 경계로 세 개 도가 접경지역인 곳이 있다. 단양 장에는 예로부터 영주, 풍기지역 상인들이 죽령재를 넘어 단양으로 물건을 팔러왔으며 강원도 영월, 평창 상인들도 제천과 단양, 영춘장터에 난전을 펼친다.

장날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버스가 미어져라 장터로 몰려들고 세 개도의 사투리들이 장터에서 거침없이 쏟아져 어우러지곤 했다.

이런 지역의 특성상 우리 고장 사람들의 말씨에는 경상도 충청도 강원도의 사투리가 뒤섞여 있다. 양미리를 호메이 고기라 하는 연유도 경상도 사투리가 죽령재를 넘어온 장사꾼들 입을 통해 자리를 잡은듯하다.

그 이름이 어디에서 왔든 참으로 정겹지 않은가. 농촌에서는 늘 곁에 있는 호미를 닮았다 하여 생선이름에다 붙였다니 출생지인 바닷가를 떠나 험한 산맥을 넘으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름이 바뀐 것이다. 하지만 오늘 이렇게 몇십 년 만에 들어본 `호메이 고기'라는 이름도 구순을 눈앞에 둔 어머니처럼 연세가 많으신 분들에게서나 들을 수 있다.

예전 같지는 않지만 정월 대보름을 맞아 장터엔 사람들로 북적인다. 여전히 경상도 억양이 강한 상인들의 목소리가 시장에 왁자하다. 호메이 고기라는 말에 장사꾼도 옛 동무를 만난 듯 반색을 한다. 노란 비닐 끈에 엮인 호메이 고기 한 두름으로 어머니의 입맛이 되살아나 머지않아 찾아오는 봄날을 건강하게 맞으시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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