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으로 가는 길
천국으로 가는 길
  • 김일복 시인
  • 승인 2022.02.20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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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김일복 시인
김일복 시인

 

모든 장례 절차가 마치고 나면, “신부님 저희 아버님은 천국에 가셨겠지요? 신부님 제 남편은 천국에 가겠지요.”라고 묻는 신자들에게 신부는 “당연합니다. 이렇게 자매님이 효도하고 기도드리며 잘 모셨는데 어찌 천국에 가시지 않겠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느님께서 지켜보고 계시고 복을 내려 주실 겁니다. 하느님께서는 슬픔을 딛고 주님의 말씀 안에서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지난해 겨울 친구의 부친상으로 장례미사를 치르고 돌아오는 길에 천국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천국은 있을까? 있다면 어디에 있을까? 천국은 어떻게 해야 갈 수 있을까?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천국은 신자가 죽은 후 그 영혼이 영원한 축복을 누리는 장소라고 한다. 그럼 천국은 신을 믿는 인간만이 갈 수 있는 곳인가? 친구의 부친상을 겪고 나니, 오래전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난다.

좋은 옷 하나, 먹을 것 하나 모든 게 다 자식이 먼저였다. 아버지는 자식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으셨다. 어느 날 아버지가 일하다 다쳐서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나이 드시고 하지 말라는 일은 왜 자꾸 하는지! 화가 났다. 병원에 가 봐야 하는데 바쁘기는 하고 안 갈 수도 없고, 속내는 답답하고 짜증이 난다. 그 시절 나는 부모가 되는 것이 우선이 아니라 자식 된 도리가 먼저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다.

생전에 소처럼 열심히 살아오신 아버지가 20년 전 세상을 달리하셨다. 언제부턴가 담배를 피우시지 않았고 그렇게 좋아하던 막걸리도 드시지 않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아버지는 간경화를 앓고 계셨다. 다른 세계의 긴 여행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 고통을 참아내며 준비하셨다. 혹 남아 있는 모든 자식의 죄까지 짊어지고 떠나시지 않았는지, 돌이켜 보니 내가 얼마나 잔인하게 지껄였는지, 나의 어리석음의 끝은 어디까지인지? 나는 영원히 곁에 있어 줄 거라 믿었는데, 황망하게 아버지를 보내드렸다.

아버지는 천국에 가셨을까? 권효가의 일부분인 `子女汚 以手自執 (자녀오변 이수자집) 父母流唾 思濊不近 (부모유타 사예불근) 持來菓子 與子之手 (지래과자 여자지수) 爲親賈肉 全無一斤 (위친가육 전무일근)'이라는 내용은 `제 자식의 오줌똥은 손으로도 주무르나 부모님의 흘린 침은 더럽다고 멀리하고 과자봉지 들고 와서 아이 손에 쥐여주나 부모 위해 고기 한 근 사올 줄은 모른다. 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꼭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지금 내가 지옥에 가더라도 아버지만큼은 천국으로 보내 주세요, 라고 속죄한다면 염치없는 일이겠다.

부모님을 여의는 일은 누구나 겪는 일이다. 죽음은 관념이고 피상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진리요. 영원한 삶이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세, 지금이 천국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죽음이나 사후에 벌어질 일에 대해 미리 걱정하고 싶지 않다. 살아온 삶은 이미 지난 시간이다. 남은 삶에 대해 무언가를 준비한다고 해서 천국에 갈 수는 없다. 우리는 지금 천국을 의식해야 한다.

생사여일(生死如一)이라 했던가? 삶과 죽음이 같다면 삶 안에 죽음이 현존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죽음은 미래의 어떤 것이 아니라, 이 순간 현재인 것, 그러면 지금이 천국일 것이다. 이 순간이 생(生)이므로 순간에 충실한 사람은 지금 천국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정월 대보름이다. 부모님에게 자주 안부를 묻는 일이 천국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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