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부리의 추억
주전부리의 추억
  • 임현택 괴산문인협회 지부장
  • 승인 2022.02.17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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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임현택 괴산문인협회 지부장
임현택 괴산문인협회 지부장

 

나른한 오후 구진하다. 뒤적뒤적 냉장고와 다용도실을 열어봐도 입맛 다실만 한 주전부리가 마땅치 않다. 먹잇감을 노리는 하이에나처럼 매섭게 탐색을 하다가 겨우 노릇노릇한 두부과자와 감자칩을 발견하고 잽싸게 낚아챘다. 
햇볕이 꽉 찬 실내에서 한입 가득 오물거리는 이 시간, 먹구름을 걷어내고 초록이 일렁이는 듯 평온한 시간을 만끽한다. 담백하고 고소한 두부과자와 짭짤하고 구운 맛이 나는 감자칩은 허기진 마음까지 메워주는 주전부리로 최고다. 브레이크 없는 손길에 금세 바닥을 보이는 과자 봉지다.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예전 친정집에서 만들었던 건빵 강정을 만들기로 했다. 
유년 시절 건빵과 튀밥이 유일한 간식이었다. 장날이면 생전 어머님은 됫박으로 파는 건빵을 사오셔서 건빵 강정과 튀밥 강정을 만드셨는데 그 기억을 가만가만 더듬었다. 정월대보름 부럼으로 남은 땅콩, 호박씨, 해바라기씨를 한군데 모았다. 땅콩 속껍질을 까다 보니 제아무리 조심을 해도 얇은 속껍질은 사방으로 훌훌 날아다니는 것이 어머님처럼 노련치 않다. 하얗게 속살을 드러낸 땅콩, 기계로 잘게 분쇄하면 편리하지만 어머님처럼 절구에 적당하게 찧어 놓았다. 궁중 팬에 기름을 넣고 건빵을 튀겨냈다. 물엿에 준비한 땅콩가루, 호박씨, 해바라기씨를 넣어 조물조물 잘 버무리면 건빵 강정이 뚝딱 완성된다. 온 집안은 달달하고 고소한 냄새로 점령했고 군침이 꼴깍 넘어간다.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다고 식혀야 바삭바삭 제맛이건만 참지를 못하고 뜨거운 강정 하나가 입속에서 오물거린다. 달콤하고 고소한 강정, 입안에서 추억이 살살 녹는다.
그렇게 생전어머님께서 뚝딱 개발하신 어머님표 건빵 강정, 레시피도 없었지만 최고 간식이며 화제였다. 이처럼 어느 해인가 조지크럼이란 요리사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19세기 유능한 요리사인 조지크럼, 고객 중 한 분이 감자튀김이 두껍다며 볼멘소리로 얇게 만들어 달라고 요청을 했다. 얇게 만들어 주었지만 고객은 여전히 그의 감자튀김이 두껍고 맛이 없다며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며 퇴짜를 놓았다. 이에 조지크럼은 고객을 골탕먹이려 부러 감자를 얇게 썰어 바싹 튀긴 후 소금을 왕창 뿌려 불평 많은 그 고객에게 드렸다. ‘이제 더 불평을 하지 않겠지’속내를 감추고 요리를 내놓았다. 그런데 이변이 생겼다. 불만이 많던 고객은 물론 다른 고객들까지도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짠듯하지만 바삭하고 구운 맛의 고소한 튀김, 얇아서 먹기에 불편이 없고 무엇보다도 입안에 살살 녹는 감자튀김은 매력적이었다. 그 후 만족도가 높은 얇은 감자튀김은 새로운 레시피로 탄생하고 인기메뉴가 되었다. 그렇게 조지크럼은 불평이 많은 고객을 끝까지 응대하면서 신메뉴를 개발하게 된 것이 감자과자 ‘포테이토칩’이다. 
부정은 부정을, 긍정은 긍정을 낳는다. 늘 불만을 토로하던 고객에게 부정을 부정으로 대하였다면 어찌 되었을까. 분명 고객은 똑같은 음식임에도 부정적인 상상을 먼저 하면서 음식을 먹었기 때문에 맛이 없었을 게다. 또한 요리사는 골탕먹이려고 한 요리지만 고객을 냉대하지 않고 부정보다는 요리사의 마인드로 요리를 하여 고객을 응대했다. 때문에 서로의 마음이 동하였는지 새로운 감자튀김으로 탄생하여 만족이라는 쾌거를 안은 것이다.
일상생활에 사소한 일에 감사하며 만족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못마땅하다며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는 사람도 있다. 매사에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이 있더라도, 조지크럼처럼 냉대하지 않고 그가 말하는 것을 진심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고 한다. 현대는 개인주위 시대라지만 손길 따라, 손맛 따라 레시피도 없던 추억의 달달한 건빵 강정처럼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여유 있는 마음을 가지는 건 어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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