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나는 게 당연하다고요?
화가 나는 게 당연하다고요?
  •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장
  • 승인 2022.02.17 1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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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이야기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장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장

 

그림책의 가치 중 최고는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의 경계를 풀게 하는 말랑말랑한 매체가 있는데, 어린이 동물, 자연이 그렇다. 그림책 또한 그렇다. 우리 마음의 깊은 곳에 자리한 무의식적 환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기에, 우리는 그림책을 보며 꿈과 희망, 따뜻함 그리고 행복한 상상을 한다. 
그런데 어떤 그림책은 즐겁게 보기엔 다소 무거운 것도 있다. ‘너 왜 울어?(바실리스 알렉사키스 글·장 마리 앙트낭 그림, 전성희 옮김, 북하우스)’가 바로 그런 책이다. 자녀교육 그림책으로 소개하는 이 책은 표지부터 심상치가 않다. 빨간 손톱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는 빨간 모자를 쓴 아이가 자기의 발끝을 바라보고 서 있다. 빨간 손톱이 주는 느낌이 서늘하고 무섭다. 여우나 호랑이의 손톱처럼 보인다. 표지의 중심에 커다랗게 그려진 손의 그림자는 다른 그림보다 크게 왜곡되어 있다. 마치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엄마와 아이가 외출을 준비하는 이야기로 시작되어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 이야기가 전개된다. 장난감 비행기를 가지고 놀고 있는 아이에게 엄마는 외출해야 하니 코트를 입으라고 한다. 엄마와 아이는 놀이터에도 가고 슈크림도 사 먹고 집으로 돌아온다. 엄마는 아이가 놀이터에도 가고 싶고 간식도 먹고 싶으며 길에 버려진 끈과 지렁이에게도 관심이 많은 아이라는 것을 잘 알아차린다. 자녀에게 관심이 많은 일반적인 엄마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림책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마음은 점점 더 불편해진다. 엄마의 모습에 내 모습이 투영되기도 하고 자녀 모습에 내가 투영되기도 한다. 엄마는 아이의 욕구는 잘 알지만 받아내지는 못한다. 엄마의 말은 송곳처럼 날카롭다. 아이의 표정과 행동에 비난과 지시와 명령만이 따라온다. 그러다 보니 아이의 말은 그림책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엄마는 말한다. 자신이 원해서가 아니라, 아이가 원해서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이다. 집안일도 해야 하고 자신의 시간도 갖고 싶지만, 엄마니까 참고 견딘다고 말이다. 엄마는 아이에게 화를 내고 있는데 엄마는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화를 넘어서 분노로 보인다. “감당이 안 된다.”, “아빠한테 일러준다.”, “진짜 싫다.”그리고 아이가 눈물을 보이자 왜 우냐고 다그친다. 그리고 “사람 돌게 만드네.”라고 말한다. 익숙한 문장들이 마음을 헤집는다. 나 같은 엄마를 만나 고마워하라고 생색을 내는 모습이 불편하다. 
철창처럼 그려진 엄마의 치마에 들어 있는 아이의 그림은 압권이다. 아마도 엄마는 충분히 아이에게 환경을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즐거워하지 않는 것을 문제 삼을 것이다. 정말 아이는 충분히 받았을까. 자기 심리학자 하인즈 코헛은 중요한 자기대상들로부터의 공감적 수용을 받는 경험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엄마와 함께하는 동안 아이는 엄마의 공감적 수용을 통해 엄마와 융합되며 만족감을 경험할 수 있다. 걱정, 불안, 두려움을 수용한 엄마가 평온하게 받아내 주면 아이는 포부와 희망을 품은 자존감이 매우 높은 아이로 성장하게 된다. 그와 반대로 감정을 받아주지 않고 짜증과 비난 또는 무시한다면 무기력과 우울을 가진 채로 성장하게 된다.
그림책이지만, 나는 아이의 엄마가 자기애적 상처가 매우 큰 사람으로 보인다. 성장하며 자기대상들로부터 충분히 공감 받고 수용 받은 경험이 부족한 자기애적 상처를 가진 엄마는 매번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자기애적 분노를 무의식적으로 표출한다. 아이는 엄마의 자기애적 분노를 받아내며 공감하고 인정해 줄 대상이 아니다. 아이는 받아야 할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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