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매화
  •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2.02.14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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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언제까지 물러갈 것 같지 않던 겨울도 입춘이 지나고 나면, 서서히 봄에게 자리를 내 주게 마련이다.

겨울 끝자락은 곧 봄이 싹 트는 시기이기도 한데, 바로 이때 꽃을 피우는 것이 매화이다.

겨울꽃이기도 하고 동시에 봄꽃이기도 한 매화는 봄을 알리는 전령사로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 왔다.

조선(朝鮮)의 시인 이광려(李匡呂)도 누구 못지않은 매화 애호가였다.


매화(梅)

滿戶影交脩竹枝(만호영교수죽지) 문 가득히 그림자가 대나무와 섞여 있고
夜分南閣月生時(야분남각월생시) 밤 깊어 남쪽 누각에 달이 떠오르네
此身定與香全化(차신정여향전화) 이 몸은 분명히 그 향기와 온전히 하나가 되었구나
嗅逼梅花寂不知(후핍매화적부지) 매화에 다가가 향기 맡아도 알지를 못하니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 했던가?

사군자(四君子)에 속한 대나무와 매화는 그림자까지도 함께 어우러지는 모양이다. 시인의 방문에 두 그림자가 번갈아 어른거리는데, 바로 마당의 매화와 대나무이다.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는 것은 달빛이 있어서가 아니겠는가?

시인은 잠자리에서 일어나 문밖으로 나섰다. 남쪽 누각에 올라가 보니 달이 번쩍 떠오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누각에 있는 시인의 옷에 스민 건 달빛만이 아니었다. 아까 방문에 그림자를 드리웠던 매화의 향기도 스미고 있었던 것이다. 시인은 매화 향에 이끌려 매화 가까이 다가가서는 코를 대어 향을 맡아 보았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아무런 향도 맡질 못하고 말았다.

그 사이에 매화에서 향이 사라지기라도 했단 말인가?

시인은 곧 깨달았다. 시인의 몸에 밴 매화 향에 동화되어 매화 향을 맡지 못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윽하고 풍성한 매화 향을 역설적으로 그려 낸 시인의 솜씨가 돋보이는 장면이다.

세월의 물을 타고 흘러가지 않는 배가 있던가?

겨울도 결국 흘러가고 만다. 겨울과 봄이 섞여 있는 시기에 매화는 꽃을 피워 낸다. 여린 꽃잎과 은은한 향기로 봄을 예고하는 것에 사람들은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특히 달 뜬 밤에 매화 향을 맡아 보는 것은 운치 중의 운치 아니겠는가? 새봄을 느끼려면 늦추위쯤은 감수해도 좋지 않겠는가?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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