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를 수도 있지
모를 수도 있지
  • 반지아 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 승인 2022.02.13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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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반지아 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반지아 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몇 해 전, 드라마에 영판 관심이 없던 나의 주목을 이끈 드라마 제목이 하나 있었다. `아는 것은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엄청나게 매력적이어서 자신의 편성시간에 나를 티브이 앞에 꼼짝없이 앉혀 놓은 것도 아닌데 이상하리만큼 기억 속에 오래 자리 잡았다. 아마 제목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고 처음들은 그 순간 어쩌면 콕콕 쑤시던 양심이 마음속에 던져놓은 죄책감의 무게가 알게 모르게 계속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살다 보면 내가 당연히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존재들에 대해 사실은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마주하는 순간이 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모를 수 있는가, 하는 당혹감과 상대에 대한 미안함이 뒤섞여 흔히들 말하는 동공 지진을 피할 수 없다.

이제는 기억조차 아련해진 과거의 어느 날, 친정엄마를 통해 동생의 근황을 듣고 눈물을 쏟은 적이 있다. 동생은 용감하게 서울살이를 시작했지만 높고 높아 그 끝을 모르는 서울의 물가는 용기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동생은 한참 자존심을 세우고 또 세워도 모를 20대 초중반에 마음을 내려놓고 지인들과 같이 밥을 먹으러 가면 자신의 저렴한 메뉴로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입 짧은 소위 금수저, 은수저들이 남긴 밥까지 싹싹 긁어먹으며 채웠다고 했다.

가슴이 덜컥 주저앉았다. 주위에서 살갑게 지내는 자매들처럼 자주자주 전화하며 지내기에는 왠지 면구스러운 남동생이기에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하고 지내왔지만, 그래도 어쩌다 전화하면 동생의 잘 지낸다는 말을 너무 무심히 믿어버렸던 지난 내 모습이 말 그대로 한심했다. 앞서 언급한 드라마가 어떤 줄거리로 채워져 있는지 여전히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제목만으로도 이미 나는 정주행 하기에 충분히 부끄러운 자격을 갖춘 누나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당연히 알 거라는 기대가 상처가 되는 경우는 이뿐만이 아니다. 사람들과 얘기하다 보면 “모두가 아는 것을 왜 너는 몰라” 혹은 “내가 아는 것을 너는 왜 몰라”라는 질문을 받는 경우가 있다. 이 질문의 바탕에는 상대방이 어떤 것에 대하여 당연히 알고 있으리라는 질문자의 어긋난 착각이 존재한다.

`부부의 세계' `펜트하우스'를 지나 `오징어 게임'에 이르기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구가했던 드라마들이 방영될 때마다 언론은 시청자들의 모든 오감을 관련 기사와 출연자들의 정보로 도배하고자 안간힘을 썼다. 그들의 노력은 꽤나 성공했고 전혀 관심이 없던 나조차도 그 드라마에 주연배우가 누구이고, 무엇을 주제로 했는지까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한 발자국만 더 나아가 애청자들이 대화를 시작하면 나는 전혀 끼지 못했다. 그리고 그 후유증은 꽤나 오래갔다. 나는 여전히 “오징어 게임을 아직도 안 봤어?”라는 질문을 듣기 때문이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오징어 게임'에 대해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마음이 불편하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은 그런 불편한 감정에도 불구하고 나도 똑같은 질문을 누군가에게 던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오로지 내 기준과 관심사 그리고 많은 이들이 선호한다는 이유만으로 만들어진 이기적인 질문을 말이다.

세상에 누군가가 당연히 알아야 할 것은 없다. 그렇기에 내가 아는 것을 상대방도 당연히 알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내가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에 너무 큰 확신을 갖는 것도 스스로를 작은 틀 안에 가두는 것에 지나지 않다. 앞으로는 “어떻게 이걸 몰라?”가 아닌 “모를 수도 있지”가 만연한 사회를 꿈꾸어본다. 그 안에서 어떤 선한 영향력이 주렁주렁 맺힐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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