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을 보훈(報勳)의 의미대로
보훈을 보훈(報勳)의 의미대로
  • 노동영 강동대 경찰행정과 교수
  • 승인 2022.02.10 20: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동영 변호사의 以法傳心
노동영 강동대 경찰행정과 교수
노동영 강동대 경찰행정과 교수

 

“우리가 나라를 세우는 건국의 깃발이다. …(중략)…우리 강토의 촌토라도 이민족이 점령할 권리가 없으며, 우리나라의 털끝만한 권리라도 이민족에게 양보할 수 없고, 한 사람의 한국인이라도 이민족의 간섭을 받을 의무가 없다. 우리들 가치관이 같고 문화가 같은 이천만 형제자매들아! 국민의 본분을 자각한 독립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동양평화를 보장하고 인류평등을 실시하기 위한 자립이라는 것을 명심하여라. 밝은 하늘의 밝은 명령을 정성껏 받들어 모든 거짓의 그물에서 풀려나는 건국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몸을 던져 피로 싸워서 독립을 완성할지어다.”

이는 1919년 2월 1일(음력 1월 1일) 대한독립선언서(大韓獨立宣言書)를 발췌한 것입니다. 길림 또는 중광단 또는 무오 독립선언이라고도 합니다. 1918년 11월 만주와 러시아에서 발표된 것으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3·1 또는 기미 독립선언과는 구별됩니다.

그제 청주 3·1공원에서 실시된 2·8 독립선언 기념식을 멀리서나마 지켜보았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3·1 독립선언 말고도 덜 조명된 헌신의 역사가 많다는 것에서 선대의 피땀의 희생 덕분에 이렇게 잘 살고 있는 후손들이 염치(廉恥)를 알고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최근에 가덕면 출생의 신규식(申圭植) 선생의 업적과 일대기를 더 조명하려는 움직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신규식 선생은 당시 13도의 39인 대표이면서 낭성면에서 자란 신채호 선생과도 긴밀히 교류한 독립운동가입니다. 신규식 선생과 관련된 유족의 후손들은 임시정부의 전신인 동제사(同濟社)와 신규식 선생을 더욱 발굴하여 독립운동사를 새롭게 쓰고자 합니다.

마침 필자는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된 국가보훈대상자들께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보훈 관련 행정쟁송(행정심판과 행정소송)을 자주 수행하고, 보훈대상자 등록을 신청한 사안에 대한 국가보훈처 심사에 참여하며, 보훈 법제도 개선방안을 논의하는 보훈학회의 임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기울이는 관심과 노력에 비해 훨씬 많은 대상자들이 아직 국가보훈의 영역에 편입되지 못하는 현실에 염치를 느끼고 있습니다.

100년을 앞서는 선대의 역사 때문에 사료(史料)가 충분하지 못해 아직 발굴되지 못하거나 덜 조명된 독립유공자가 있을 것이고(195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시대적 상황상 입증자료가 부족하여 구제되지 못하는 분들도 매우 많습니다), 참전유공자, 국가유공자, 보훈보상대상자 등 다양한 유형의 보훈대상자의 요건에 해당함에도 불구하고 등급판정을 받지 못해 실제로 예우받지 못하는 대상자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시대가 흐를수록 보훈의 영역으로 편입되는 경우가 늘겠지만, 여전히 입증자료 및 법제도의 한계 때문에 보훈대상자들의 귀천(歸天) 후에는 보훈의 의미가 무색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는 독립유공자, 참전유공자(고엽제피해자 포함) 등의 보훈대상자가 제일 으뜸이었다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앞선 유공자들은 자연 소멸될 것이고, 국방의무의 이행 등 평시의 국가업무로 인한 청년층의 국가유공자가 대폭 확대되고 있어 보훈의 양상도 변하고 있습니다. 저출산의 추세에 따라 국가의 예우가 어느 수준으로 변화할지도 대비해야 합니다.

제대로 보훈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의 문제이거나 후순위의 문제가 아닙니다. 국가가 합당한 보상으로써 예우하는 것이 국가의 품격을 올리는 것이자 국민을 통합하는 지름길입니다. 국민이 목적인 국가는 보훈을 보훈의 의미 그대로 실현시킬 의무가 있습니다.

/강동대 경찰행정과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