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인상과 신뢰 도시
물가인상과 신뢰 도시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2.02.08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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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김치공장 노동으로 힘이 부친 아내의 기력보충을 위해 집 근처 소고기 곰탕집을 가끔 찾는다. 며칠 전에도 그 식당에 들러 곰탕을 먹다가 은근히 끓어오르는 부아를 참아내느라 밥맛을 잃었다. 갑자기 올라간 곰탕 가격 때문인데, 불과 한 달도 채 못 된 사이에 거듭되는 인상이어서 쓴맛이 날 지경이었다. 한 달 전 가격을 올렸을 때만 해도 `소상공인'의 어려움을 핑계로 그럴 수밖에 없을 것으로 이해하는 입장이었다. 영업시간은 줄어들고, 함께 자리를 할 수 있는 인원수도 제한되는 방역규제의 와중에 대부분의 원재료 값이 오르니 버텨내기가 쉽지 않을 것은 시민들도 대체로 공감한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의 지난 1월 외식물가상승지수 상승률은 지난 해 같은 기간에 비해 5.5%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경기침체가 극심했던 2009년 2월의 5.6% 이후 12년 11개월만에 가장 높은 것이다. 게다가 지금의 물가인상 파고는 `곰탕 한 그릇'에만 국한하지 않고, 전 세계적으로 식료품을 중심으로 대부분의 생필품의 가격 상승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니, 그저 참아내면서 한숨으로 견뎌낼 수밖에 없다. `현실'이 그렇다고 물가상승을 그저 체념한 채 언제까지 버틸 수 있겠는가.

`곰탕 한 그릇'을 먹으며 나는 예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인심'을 생각한다. 물건의 가격이 오르는 물가인상은 어느 때, 어느 곳에서든 일어날 수 있다. 한 때는 「00의 사정으로 부득이 가격을 올리게 됐습니다. 가격을 올리는 만큼 더 좋은 서비스와 정성을 제공하겠습니다.」라는 안내문을 붙이고 소비자의 양해를 구해 왔으나 지금은 그마저 실종되고 말았다. 한 번 오른 가격은 원재료의 가격이 낮아지는 등 사정이 나아질 때 합리적으로 인하될 것이라고 우리는 믿지 않는다. 실제로 그런 일은 좀처럼 없다. 사정이 어렵다고 종업원을 마구 자르고, 일방적으로 가격을 올리면서 소비자에게 겸손한 양해도 구하지 않는 세상이 아름다워질 수는 없다.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은 소상공인에게만 있지 않고 모두에게 해당된다. 그래서 일방적인 가격인상에 아주 작은 예의마저 인색한 세태가 불안하고 그런 도시에 신뢰는 쌓일 수 없다.

일방적이고 거듭되는 가격인상에 불만은 또 있다. 신용카드가 보편화된 지 오래인데도 가격인상은 한결같이 1000원 단위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굳이 거스름돈을 계산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는데 그렇게 큰 폭으로 값을 올리는 것은 억울하다.

거기에는 물가관리에 손을 놓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안일함도 한 몫하고 있다. 적어도 물가안정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지방물가 관리 품목에 해당되는 30종의 가격인상에 대해서는 인상요인과 적정한 인상 정도에 대한 지침이 제시되어야 하며 시민인 소비자에게 적극적으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더불어 가격인상의 불가피함을 양해하는 안내문 게시를 권유하고, 필요하다면 안내문을 지자체에서 제작해 제공하는 것도 필요하다.

첫 아이를 낳은 엄마가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붙인 인사가 동네사람들의 화답으로 이어졌다는 훈훈한 소식을 얼마 전에 들었다. “서툴지만 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충간 소음에 대한 양해를 구하는 메모에 격려와 응원, 그리고 기쁨을 나누는 이웃의 작은 물결이 더 좋고 더 밝으며, 함께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착한 세상을 만든다.

가뜩이나 소통이 줄어든 세상, 일방적인 부담의 전가는 시민 사이의 단절의 깊이를 심화시키고 양심과 배려의 가치를 영영 잃어버리게 하는 부작용을 고착화시킬 수 있다.

공유와 공존을 추구하는 소비 형태는 시민과 지자체의 노력으로 함께 만들어갈 수 있다. 가격인상의 불가피함을 설명하는 안내문은 서로에게 향하는 배려와 존중의 흔적을 남긴다. 소비자의 좋은 평판이 곧 돈의 가치로 환산되는 것과 같다는 개념인 평판 유동성(reputation currency)이 좋은 공급과 소비의 사회가 신뢰도시를 만들 수 있다.

곰탕을 먹고 힘이 나는 것 같다는 믿음과 아름다운 세상은 작은 것이 모여 만들어진다는 희망은 서로 다르지 않다. 힘내라. 소상공인들이여. 다만 언제나 시민인 소비자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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