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의 삶
새들의 삶
  • 김기자 수필가
  • 승인 2022.02.08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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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기자 수필가
김기자 수필가

 

한겨울이다. 주택가 골목에서 낮게 날고 있는 새를 본다. 그동안에도 제법 요란한 소리로 귀를 자극해오던 직박구리이다. 이 추위에 저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먹이는 무얼 먹으며 또 둥지는 어느 집 처마 끝에 있을까, 아니면 공원의 구석진 나뭇가지에 있을까 하면서다.

생각해보니 늘 두 마리가 다니는 거였다. 부부임이 틀림이 없다. 언젠가 여름날에는 물어서 옮기던 새끼를 떨어뜨렸는지 안절부절 울어대기에 구해준 적이 있어 그렇다. 그 후로는 관심이 떠나지 않았다. 추운 날인만큼 보기만 해도 작은 염려를 버리지 못하고 있던 터,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다.

아침나절 대문을 열고 나오는데 두 마리가 유난히 머리 위로 활공을 한다. 전과는 다른 날갯짓이다. 왜 저럴까 하고 쳐다보는데 처마 끝으로 몸을 가까이 닿으려 한다. 이유를 몰랐다. 그날따라 전날 내린 눈이 녹아지기 쉬울 만큼 날씨가 풀리던 참이었다. 돌아서다 말고 찰나에 무언가 스쳐가는 거였다.

신기했다. 새들은 물을 마시기 위해 처마 끝에 매달리고 있었다. 햇볕에 녹아내린 물을 먹느라, 그것도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을 먹느라 그 많은 몸부림을 해야만 하는 거였다. 작은 물방울 하나가 새들의 목을 축인다고 생각하니 처마에 걸린 잔설마저 소중하기 그지없었다. 그뿐이 아니다. 어느 가을날 들녘에서 발견한 야생 열매며 씨앗들이 새들의 먹이가 된다는 사실까지 머릿속에 되살아왔다.

새들도 나름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하늘로 향하고 말았다.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 것이다.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다면 하루의 삶으로도 만족할 수 있다. 하지만 어디 그렇게 만은 살 수가 없는 현실이지 않은가. 내일이 있기에 오늘을 아껴야 하고 그 안의 것들을 저장하면서 또 내일로 걸어가는 내가 아니던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많은 영화를 위함도 아니요, 삶의 반경을 지켜가기 위해 부끄럽지 않은 최소한의 법칙이란 것을 말할 뿐이다.

새들은 머리 둘 곳, 먹을 것에 대해서도 걱정을 않는다. 그것을 보며 사람과 다르다는 신성한 생각을 그치지 않기로 했다. 어언 걸어온 생의 시계가 오후를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저 새들과 지금의 나를 비교하니 가진 것이 참 많다는 것까지 깨닫는다. 따뜻한 집이며 의복이며 먹을 것들, 그래도 여전히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염려 중인걸 어쩌면 좋으랴.

어른이 되기 위한 길은 녹록하지 않았다. 결혼해서 자식을 두고 하루하루 지탱해온 날들은 그야말로 바쁘게만 이어져 갔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만 했듯이 삶의 곡선마저 가파르고 혼란하기가 일쑤였다. 새들처럼 유유자적 해 보이는 날들을 누리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완만한 나이만큼의 길목에서 여유를 찾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자연에서 보고 느끼는 점 하나하나가 마음의 변화를 이끌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혹여 덜어내지 못했던 마음의 짐이 있다면 이제는 벗어버리는 거다. 날마다 자아와의 타협을 이어가는 가운데 하늘빛은 유난히 밝으리라 믿고 싶다. 공중의 새들에게서 한 수 배웠다고나 할까.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가까이에 널려 있다는 사실을 하나하나 헤아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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