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노트
엄마의 노트
  • 박윤미 노은중 교사
  • 승인 2022.02.06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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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엿보기
박윤미 노은중 교사
박윤미 노은중 교사

 

요즘 엄마의 노트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엄마의 맞춤법은 바르지 않지만 엄마 목소리가 들린다고 상상하며 한 글자씩 읽어 가니 다 이해가 된다. 그런데 내가 빙그레 웃는 모습을 보고는 엄마는 글자가 틀려서 웃느냐며 부끄러워하신다.

`아버지는 아푸고 어머니는 애기르 자꾸 나서 이르 모태 집이 말이 아니어슴니다. 어린 나는 고생이 말도 모태슴니다.'

중간에 고쳐 쓴 부분도 없고 문단도 없이 대여섯 장이나 계속되었다. 큼직한 글자가 한 줄에 들어가지 못해 다음 줄까지 걸쳐 있더니 한두 페이지 넘기자 모두 줄 안으로 들어갔다. 맨 위에 `아버지와 어머니 살아온 이야기-들은 이야기'라는 제목이 있고, 그 아래에 외할아버지가 태어나 어려서 겪은 일과 외할머니와 중매로 결혼하게 된 사연, 엄마가 태어나기까지의 얘기가 있었다. 엄마는 내가 다 읽기를 기다렸다가 어떠냐고 소감을 묻는다. 제목을 먼저 쓰고 그 아래에 글을 쓴 게 참 잘했고 이야기가 재미있다고 했다. 그리고 너무 이쁘다고도 했다. 내용이 이쁘다는 건지, 글을 쓴 엄마가 이쁘다는 건지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최상의 표현이 `이쁘다'였다.

엄마는 초등학교 2학년까지 잠깐 배운 한글과 산수 실력으로 장사도 하고 마을에서 역대 가장 젊은 부녀회장을 하기도 했다. 시골 작은 마을의 부녀회장이 별거냐고 하겠지만 어린 내 눈에는 마을 일을 도맡아 척척 해내는 엄마가 다른 누구보다 똑똑해 보였기 때문에 엄마가 이 직책을 역임한 것을 좀 중요한 일로 기억하고 있다. 엄마가 배움이 적었다는 걸 인식한 적이 없었고 살면서 겪었을 여러 가지 어려움을 생각해보게 된 건 내가 그 젊은 엄마보다 한참 나이가 들어서였다. 초등학교 2학년까지의 지식만 제대로 배웠고, 한글 받침을 정확히 모른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나는 겪어보지 않아서 상상할 수가 없다.

엄마는 받침을 왜 이리 모르는지 성질이 난다고 하며 웃는데 나는 옳게 고쳐주지 않고 웃기만 한다. 내게는 그 엉성한 받침의 글자들이 너무나 특별해 보인다.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이고, 글자들 하나마다 엄마 목소리가 들린다. 지금 그대로 나는 엄마의 글을 다 이해할 수 있다. 맞춤법을 고쳐주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는 글쓰기 흐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다.

엄마의 생각이 흐르다가 작은 돌을 만나면 조금 돌아가고 작은 거는 위로 넘어가면서 개울물처럼 졸졸졸 계속 흘러가길 바란다. 처음의 흐름은 작지만 그렇게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물이 스스로 세찬 흐름을 만들어내고 더 넓은 곳에 닿게 되는 것을 상상해 본다.

요즘 엄마는 글을 쓰면서 시간을 되짚어 어린아이와 만나고 있다. 그 어린아이가 겪은 일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복잡하다고 한다. 아마 너무나 안쓰러워서일 것이다. 그러면서 또 말한다.

`그래도 그냥 받아들이려고 해. 이제 뭐 어쩌겠어. 그때는 다들 힘들었어.'

나의 글쓰기는 굼벵이가 잠자다가 한 번 구르는 듯한 속도로 조금 나아지고 있기는 한가? 나는 맞춤법은 어느 정도 알아서 실수 없는 문장을 쓸 수 있다. 또는 맞춤법 검사기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문제는 계속된다. 내 삶은 너무나 평범하고 사소하여 특별한 게 없어 보인다. 아니면 생각의 폭이 너무 좁거나 한쪽으로 치우친 거 같아 들키지 않으려 애쓰기도 한다. 요즘 와서 자주 생각하는 건데 내가 엄마만큼만이라도 살 수 있을까 하고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엄마는 할 얘기가 너무 많다고 하면서 이제 시작했으니 끝까지 쓰면 이 노트 한 권으로는 부족할 거라고 하기도 하고, 다음에 이어질 내용도 설명해준다. 엄마 웃음이 반짝반짝해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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