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마디 말
세 마디 말
  • 한기연 수필가
  • 승인 2022.02.03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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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한기연 수필가
한기연 수필가

 

설날 아침부터 내린 눈이 소복이 쌓였다. 아무도 밟지 않은 낮은 산길을 올라 성묘를 하고 농막에 모였다. 여덟 살 된 조카 손녀딸이 마냥 신나서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니 어릴 적 두 아들이 떠오른다.

결혼 후 남편을 따라 시골집에 살면서 경제적으로는 힘들었지만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두 아들은 시골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풍요로운 시간을 보냈다. 철마다 자연이 안겨주는 혜택으로 너른 들판을 뛰어다니고 냇가에서 물장구치며 여름을 보냈다. 지금이야 다양한 고가의 캠핑 장비를 갖춰 차박을 즐기지만, 그때는 경비를 줄이기 위해 차에서 잠을 자며 여행을 다녔다. 계획 없이 저녁이라도 짐을 챙겨 떠났다. 두 아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1년에 두 번은 마다하지 않고 가족여행을 간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형제간의 우애이다. 다행히 여행은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킥복싱을 하고 체격이 형보다 더 좋은데도 둘째는 형의 말을 믿고 따랐다. 가끔 어릴 적 차에서 자며 여행 한 얘기가 나오면 그 덕분에 가족 간의 유대도 더 단단해졌다고 한다. 중학 시절 반항이 심했던 둘째 아이는 남편이 무조건 품어 준 덕에 무사히 그 시기를 지나갔다.

관계란 무엇일까?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수많은 관계망을 형성하며 살아간다. 애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가족을 중심으로 한 기초적인 인간관계는 성장함에 따라 사회적 관계가 점차 확대되고 발달하여 친구, 이웃 등과 인간관계를 맺고 더불어 살아가게 된다. 서로에게 믿음을 주는 친밀한 관계를 통해서 사랑과 인정을 받고, 정서적인 안정과 즐거움을 얻는다. 반면 불만족스럽고 대립적인 관계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개인적으로 코로나 시기에 불편한 이를 만나지 않아도 돼서 마음이 편했다. 물론 불편한 사이를 만든 책임이 상대방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면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피하고 싶었다.

솔직하지 못한 화법은 때론 오해로 이어진다. 자신이 미움받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이 커져 자신감이 낮아지고, 자신의 존재나 인격을 부정당하는 것이 무서운 경우 이는 솔직하지 못한 가장 큰 원인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감정 전달과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성향 탓에 마음과는 다른 `괜찮아'를 무의식적으로 대답한다. 상대방이 불편해할 말을 하려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기회를 엿보다가 실패를 거듭한다.

연휴 마지막날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친정집에 언제 오는지 물었다. 그런데 목소리가 차갑고 싸늘했다. 다시 전화를 걸어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보니 생각지도 못했던 서운함을 토로한다. 지난 추석 무렵부터 묵혀 뒀던 감정을 드러내며 하소연하길래 `그때 당시에 솔직하게 말하지 그랬냐'고 덧붙이다가 다툼이 생겼다. 관계가 소원해진 탓이다. 평소 살갑게 안부를 전하고 서로의 관계를 지속하기 위한 노력을 했더라면 오해할 일도 부정적 감정을 쌓고 살 일도 없었을 것이다. `미안해'한 마디면 될 걸 그런다는 동생의 말에 마음이 착잡하다.

돌이켜보니 동생과 함께 나눈 시간과 공간이 많지 않다. 언니 노릇을 제대로 못 한 미안함을 표현하지도 못했다. 결혼 후 두 아들과 여행을 다니면서 가끔 나와 여동생이 나누지 못했던 시간이 아쉬웠다. 어렵게 용기를 내 `미안해'라는 말과 함께 문자를 보냈다. `사랑해, 고마워'는 쑥스러워 전하지 못했다. 나를 둘러싼 다양한 인간관계를 이해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함을 깨닫는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란 시를 새겨본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야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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