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래동화의 멋진 변신
전래동화의 멋진 변신
  •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장
  • 승인 2022.02.03 18: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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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이야기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장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장

 

길고 긴 설 연휴가 즐겁지만은 않았다. 몸과 마음의 양식을 준비하고 넉넉하고 따뜻한 연휴를 즐기고 싶었는데 몸이 또 말썽을 부려 훼방을 놓는다. 편안함을 허락했다가 반대하기를 반복하는 몸에 마음을 맞추느라 애쓰며 자다 깨기를 반복한다. 설 풍경을 꾸며주기라도 하듯 소담하게 내리는 눈을 마음으로 만지니 오히려 따뜻함을 느낀다.

춥지만 따뜻한 그림책을 소개한다. `연이와 버들 도령(백희나 글·그림. 책읽는곰)'은 그림책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두껍다. 옛이야기를 재해석했다는 것도 눈길을 끈다.

더구나 `구름 빵'과 `알사탕'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아동문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상 수상자인 백희나 작가의 3년 만의 신작이라 모두 반기며 관심을 갖는 책이다. 작가의 사랑과 정성과 수고가 얼마나 들어 있는지가 느껴지는 귀한 책을 만나 행복하다.

옛이야기는 오랜 세월 전승되어 오면서 인간의 보편적 무의식과 정신적인 갈등을 담고 있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매력이 있다. 고전에 담긴 인간의 무의식적 소망 충족은 내가 경험한 바로는 언제나 훌륭하다.

이야기의 주인공 연이는 나이 든 여인과 함께 산다. 표지의 시리도록 푸른 배경과 눈보라. 그리고 연이의 표정은 연이가 처한 현실을 보여준다.

나이 든 여인은 연이에게 상추를 가져오라고 한다. 추운 겨울에 상추라니, 현실에 순응하지 못하는 나이 든 여인임을 알 수 있다. 나이 든 여인이 순응하지 못하는 현실은 무엇일까.

연이는 상추를 찾으러 길을 나선다. 춥고 배고픔에 지친 연이는 좁은 길을 통해 동굴로 접어든다. 이 좁은 길은 어디로 연결되어 있는 걸까. 어둡고 좁은 길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마치 뒤로 가는 것 같다. 살아오며 놓친 무언가를 다시 찾아가는 여정으로 느껴진다.

좁은 길의 끝은 연이가 살아온 시간, 공간과 너무도 다르다. 환하고 따뜻하여 아름답기까지 한 그곳, 우리가 꿈꾸는 환상의 세계를 보여준다. 동굴과 밖은 너무도 다르다. 두 곳은 분명 하나의 길로 연결되어 있는데 말이다.

연이와 버들 도령의 만남이 예사롭지 않다. 버들 도령은 연이와 비슷한 또래의 남자아이다. 남자와 여자, 추위와 따뜻함 너무도 대비되는 상징 안에서 우리는 연이의 소망을 찾을 수 있다. 버들 도령은 연이에게 필요한 곳에 쓰라며 피살이, 살살이, 숨살이 풀을 준다. 연이가 버들 도령에게 받은 풀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제 연이의 손에 쥐어진 것은 무엇인가.

이야기의 전개가 흥미롭다. 나이 든 여인에 의해 재가 된 버들 도령, 도령이 재가 되었는데 연이는 눈물이 나지 않는다. 연이는 그저 가여워할 뿐이다. 연이는 자기결정을 내린다. 자기가 가진 살살이, 피살이, 숨살이는 버들 도령의 살과 피와 숨이 된다. 이제야 연이는 눈물이 흐른다. 버들 도령이 준 그것은 이제 연이의 것이고 연이는 그것을 사용한다. 나를 위해서.

연이가 소망했던 삶을 얻기 위해 연이는 자기 결정이라는 시간을 넘어야 한다. 그러려면 자신 안의 또 다른 자기를 만나야 한다. 그동안 나로 인식해왔던 나, 그런 나는 환경에 순응하고 소망을 억압하는 나였다.

누군가에 의해 무너지고 짓밟혀왔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내가 나를 마주하지 않아 한 편으로 기울어진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결코 무너지거나 포기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바로 나를 살리는 자기와의 만남이기 때문이다.

그림책을 꼭 분석하며 깊게 읽을 필요는 없다. 연이와 버들 도령의 사랑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하는 일이 마음을 돌보는 일이기에 내가 만나고 경험하는 모든 것이 마음을 보는 거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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