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1
산책 1
  • 반영호 시인
  • 승인 2022.02.03 18: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론
반영호 시인
반영호 시인

 

겨울이 깊다. 그럴수록 봄은 가까워진다. 산책하기엔 힘겹지만 거꾸로 추위를 이길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땀을 뻘뻘 흘리며 걷다 보면 추위도 잊는다. 운동화 끈을 졸라매고 단장하나를 짚으니 등산하는 산악인 같다.

漢道初全盛
한(漢)나라 국운 처음에는 융성했으니
朝廷足武臣
조정에는 무신도 넉넉했다네
何須薄命妾
어찌 꼭 박명한 여인이
辛苦遠和親
괴로움을 겪으며 먼 곳까지 화친하러
가야 했던가
掩涕辭丹鳳
흐르는 눈물 가리고 단봉성을 떠나
銜悲向白龍
슬픔을 삼키며 백룡대로 향하네
單于浪驚喜
선우(單于)는 놀라 기뻐했으나
無復舊時容
더 이상 옛날의 그 얼굴 아니었다네
胡地無花草
오랑캐 땅엔 꽃도 풀도 없어
春來不似春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自然衣帶緩
옷에 맨 허리끈이 저절로 느슨해지니
非是爲腰身
가느다란 허리 몸매를 위함은 아니라오

春來不似春. `봄은 왔건만 봄 같지가 않다'는 왕소군(王昭君)의 슬픈 사연을 노래한 당(唐)나라 시인 동방규의 시 `소군원'에서의 `춘래불사춘'이다.

오늘 산책은 한금령으로부터 출발한다. 원남면의 보덕산 줄기에 있는 고개다. 한금령에 떨어진 빗물이 음성 쪽으로 흐르면 한강으로 흘러가고 보천 쪽으로 흐르면 금강으로 흘러가는 분수령(分水嶺)이다. 한 방울의 물이 흐르는 방향에 따라 진로가 결정되듯 청소년기의 진로 결정이 한 사람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생각하면 내가 청소년은 아니지만 이곳에서의 출발의 의미 또한 유다르지 않을.

사실 지난가을에도 이곳으로 산책을 왔었다. 가을은 봄과는 정 반대의 전혀 다른 정서다. 가을 느낌이 갈색이라면 봄은 초록색깔이다.

록키산(맥)에 봄이 오면 /나는 당신 곁에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하늘빛 눈을 가진 /귀여운 내 연인 그대 산들에게로. //새들은 하루 종일 노래하고,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고/되풀이해서 말하겠어요./ 록키 산에 봄이 오면,/저 멀리 록키 산에 봄이 오면. -록키산에 봄이 오면(When It`s Springtime In The Rockies) - 슬림 휘트맨

지난해 봄이 엊그제 같은데 여름이었고, 가을인가 싶더니 춥고 긴 겨울이었다. 웅크림으로 견디며 고대했던 봄. 겨울 동안 눈 쌓인 계곡을 누비며 유일하게 낭송하는 영시 `록키산맥에 봄이 오면'을 낭송해 보며 버텼다.

봄기운에는 신비로운 생명의 조화가 있다. 그러나 이 자연의 이치에도 저절로 값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마른 가지에 싹을 틔우기 위하여 나무도 나와 같이 혼신의 힘을 다해 땅 밑에 흐르는 생명의 수액을 빨아올리는 것이리라. 봄이 오면 꽃은 저절로 피고 또 때가 되면 저절로 열매가 익는 줄 알았는데 자연도 치열한 삶을 살아가면서 또 서로 상생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