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려보자
기다려보자
  • 강석범 충북예술고 교감
  • 승인 2022.02.02 19: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예술산책
강석범 충북예술고 교감
강석범 충북예술고 교감

 

2021년 프로야구 우승팀 KT 이강철 감독은 우승 후 다음과 같은 인터뷰를 했다. “나는 늘 2인자였다. 지도자로서 1위를 해보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일단 한 번은 이룬 것 같다.” 이 감독은 현역 시절 10년 연속 10승에 통산 152승을 거둔 언더핸드 투수의 레전드였지만 국보급 투수로 회자되는 선동열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지도자로 입문한 뒤에도 코치로만 13년을 보냈고 팀 감독 대부분은 그의 후배들이었다.

누구나 스타가 되고 싶다.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슈퍼스타가 있으면 2인자 또는 무명으로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고 있는 더 많은 사람이 존재한다. 역설적으로 그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슈퍼스타도 존재하지 않을까?

얼마 전 충북예술고등학교(교장 이영정) 공연장에서는 아주 소박한 연주회가 있었다. “교감 선생님! 조금 후에 강당에서 작은 공연 있는데 와 보실래요?” “무슨 공연요?” “오늘이 방학 특강 마지막 날이어서 그동안 연습한 곡을 무대에서 한 번씩 연주해보려고요, 교감 선생님 와 주시면 애들이 참 좋아할 것 같은데….” 전공 선생님께서 살짝 내 표정을 살핀다.

강당에는 열댓 명 남짓 학생들이 무대 아래 널찍이 자리하고, 무대 위는 늘 그렇듯 몇몇 학생이 연주 세팅을 위해 부지런히 움직인다. 첫 번째 국악팀의 연주가 끝나고 종종걸음으로 가야금을 들고 무대를 내려오는 학생들이 쑥스러워 어쩔 줄 모른다. 반주에 맞춰 `태평가' 한 가락을 구성지게 뽑고 내려오는 녀석은 아쉬움 가득한 표정이다. 곧이어 바이올린, 첼로, 콘트라베이스를 무대 중앙에 놓고 몇 발짝 뒤에 피아노가 자리 잡는다. 늘 보았던 익숙한 현악 앙상블 구성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 인사를 할 때부터 자신감이 없는지 아이들이 쭈뼛댄다. 어째 아마추어 같다. 내가 이렇게 표현하는 이유는, 그동안 보아온 음악과 아이들의 무대가 워낙 프로다웠기 때문이다. 살며시 웃음이 났다. 연주 시작과 동시에 나는 의자에 기대어 눈을 살짝 감았다. 역시나 감미로운 바이올린과 첼로의 선율은 무한 상상의 세계로 나를 이끈다. 얼마가 지났을까? 깜짝 놀랐다. `이 불협화음은 뭐지?'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예고 음악이다. 속된 말로 정말 네 명이 각자 논다. 이미 무대 위 연주자들도 눈치 챘다. 겨우 무대를 마치고 파김치가 된 아이들에게 지도교사는 준비된 다음 곡을 지시한다. “괜찮아~ 잘하고 있어~, 잘하는 거야~” 무대 아래서 아이들에게 주먹을 불끈 들어 보인다. 다음 곡은 더 가관이다. 이미 자신감을 잃은 아이들 연주 소리는 점점 작아진다. 더는 합주가 아니다. 지금은 그냥 독주다. 나는 지금의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했지만, 어렴풋이 느낌이 왔다. 맞다. 나는 그동안 저 친구들을 무대 위에서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실제 예고 학생 중 중요한 메이저급 공식 무대에 오르는 건 `낙타의 바늘구멍'과도 같다. 오디션을 통해 뽑힌 그야말로 악기별 최고연주자 들만 메이저급 무대에 선다. 소위 말해 그들 중에는 슈퍼스타다. 오늘 연주한 학생들은 슈퍼스타가 아니다. 이들은 2인자 또는 미래를 꿈꾸며 부단히 노력하는 현재 무명 연주자들이다. 나는 일어서 힘찬 박수를 보냈다. 강당의 모든 이들도 똑같이 일어나 큰 박수로 응원한다. 이들에게 10년, 20년 후 제2의 이강철 감독을 그려본다. 기다려보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