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휴가
화려한 휴가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8.03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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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 규 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는 다짐을 거듭했다. 27년이 지난 지금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으로, 또 극도로 냉정한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자기최면을 시도하면서 스크린을 응시했던 영화 '화려한 휴가'.

27년 전, 그때 나는 스물이 갓 넘은 이 땅의 피 끓는 젊음이었고 역사와 정의라는 이름에 숙연해지는 대학생이었다.

그날 신새벽 찾은 교문엔 착검한 소총을 든 군인들이 늙은 수위아저씨를 대신하고 있었고, 타오르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졸지에 절망으로 뒤바뀐 사이, 우리는 그 곳 광주에서의 일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다시 컴컴한 영화관에서, 손수건을 입에 물고 흐느끼는 5·18 이후 세대의 안타까움에 뒤섞인 채 애써 냉정을 유지하려 팔짱을 끼고 있던 내 설움은 애국가에 뒤이은 영화 속 총성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부서진다. 당초에 나는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면서 공연예술 전공자의 입장을 끝까지 고수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다.

비록 한국 현대사의 처절한 상흔과 더불어 내 젊은 날의 회한과 가슴 떨리는 도피의 기억이라는 개인사적 점철이 있었다 해도 객관적인 시각에서의 관람이 충분히 가능하리라 여겨왔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며, 다만 침체의 늪에 빠져 허덕이고 있는 한국영화를 구원할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적 속내를 보듬으며 편안한 마음으로 영화를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가만히 있는 개를 걷어차서 짖으면 매질해서 쓰러트리고, 시끄러운 걸 막아줬으니 나머지는 모두 말 잘 들어야 한다.'는 김신부(송재호 분)의 장면에서 폭력을 정당화하는 논리적 모순에 치를 떨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면 영화는 현실이 된다. 사고무친(四顧無親) 단 두 형제만 남은 평범한 택시운전사(김상경 분)와 그가 짝사랑하는 예쁘고 마음씨 고운 간호사(이요원 분)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지극히 평범하고도 풋풋한 멜로는 그러나 군 특수부대와 무자비한 폭력, 시민에게 향하는 총성이 난무하면서 극도의 공포와 경악, 그리고 처절한 슬픔으로 점철된다.

그로부터 27년, 역사는 아직도 그날의 발포명령 책임자를 색출하지 못했고, 그 사이 군사독재의 집권과 백담사, 은닉재산의 갖가지 변죽만이 요란한 상태에서 기억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우리는 절대 폭도가 아니다.'라는 절규와 '시민여러분 우리를 기억해 주세요'라는 애끓는 외침이 깜깜하고 텅 빈 골목을 메아리칠 때 과연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이 영상미학으로 덜어질 수 있는가라는 갈등에 시달리게 된다.

영화가 과거의 역사를 조명하며 인식과 사고의 틀을 전환하기 위한 메시지를 내포한다 해도 그런 간접적인 방식으로는 결코 현실의 아픔이 치유될 수 없다.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라는 단어조차 실종되게 만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의 치유는 화해는 하되 진실은 철저히 밝혀야 한다는 '진실·화해를 위한 미래위원회'에서 비롯된다.

우리에게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있다. 그러나 역사왜곡의 근간이 되는 반민특위 등 친일의 잔재가 유지되는 현실은 여전히 그 출발점부터 다시 찾아야 한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가해자로 각인된 진압군인의 미칠 것 같은 그 날 이후의 이야기인 영화 '박하사탕(감독 이창동)'과 '그 날 광주'로 인한 상처를 고스란히 드러내며 세상을 떠도는 소녀의 처절함을 담아낸 '꽃잎(감독 장선우)'에 이어 강풀의 만화 '26년'에 이르는 통한의 문화적 재조명은 애틋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범하고 성실한 양측의 고통 외에 학살이 자행된 본질의 벽은 여전히 두텁다는 현실에 대한 분노는 남아있다.

그 날 영화관을 나오자마자 맞닥트린 강렬한 폭우. 또 평범한 시민이 벼락을 맞아 숨졌고,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아직도 좋은 소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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