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은 찾아 무얼 하리
고향은 찾아 무얼 하리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8.03 23: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때 중학생이었을 게다.

잠시도 쉬지 않고 비가 내려 황토물이 내려가고 그 물살에 뿌리뽑힌 나무와 그 나무에 매달려 떠내려가던 돼지의 슬픈 눈을 바라본 것이. 그리고 그날 밤에 우리 가족을 비롯한 동네 사람들은 돼지보다 더 슬픈 눈으로 물난리를 피하고자 짐을 싸야만 했다.

어머니는 이불을 싸서 머리에 이고 나는 옷가지를 싸서 어깨에 메었다. 물론 동생들도 한 두 가지씩 가재도구를 들었겠지. 우산을 받쳐 들고 손금보다 더 잘 아는 길을 걸어 좀 높은 지대로 몸을 피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손전등을 든 교회 전도사님이 어머니에게 호통을 친다.

모두 깜짝 놀랐다. 너무나 잘 아는 길이라 손전등도 없이 길을 나섰는데 앞장을 서신 어머니께서 그만 물이 철렁거리는 냇물 쪽으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비에 젖은 병아리들을 이끌고 말이다. 호통을 듣고 멈춰 선 곳은 황토물이 내려가는 그 냇물 일보 전이었다. 아찔했다. 호통을 쳐 알려준 전도사님이 예수님 같았다. 물에 잠겼던 집에 물이 좀 빠진 다음날 가 보니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가 별다를 바 없이 지내던 우리는 오히려 장마로 인한 변화가 즐겁기까지 했던 철부지시절이었다.

장마가 지나고 나면 무더위가 이어지는데, 그때는 주로 황토물이 내려가던 냇가에 모여 앉아 느티나무 그늘을 즐겼다. 짝을 찾아 울어대는 매미소리를 들으면서 엎드려 방학책을 하기도 했었지. 우리는 온종일 물에 가서 살았지만 때는 닦지 않아서 늘 꼬질꼬질했다.

밤이 되면 동네 아주머니나 아저씨들은 우리가 낮에 놀던 그 자리에서 뜨거운 몸을 식혔다. 아주머니들은 위쪽에 아저씨들은 아래쪽에서 몸을 씻었는데, 목욕 시설을 갖추지 못한 시골인지라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을 게다. 물론 호기심 많은 우리들은 뚝방에 납작 엎드려 목욕하는 장면을 훔쳐보려고 애를 썼다. 어둡고 멀어서 별로 보이는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신이 났다.

'고향은 찾아 무얼 하리 일가 흩어지고 집 흐느진데 저녁 까마귀 가을 풀에 울고 마을 앞 시내도 옛자리 바뀌었을라. 어린 때 꿈을 엄마 무덤 우에 남겨 두고 떠도는 구름따라 멈추는 듯 불려 온 지 여남은 해 고향은 이제 찾아 무얼하리.

-박용철의 '고향'일부-

고향은 찾아 무얼 하리라지만 고향의 상실에 대한 서러움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반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도회의 골목에서 그늘을 찾아가며 여름을 지내는 나는 그리운 고향을 찾아 간다. 물론 그리던 고향은 아니다. 황토물이 내려가던 우리의 놀이터에는 무릎도 차지 않을 만큼만 물이 내려가고, 느티나무는 베어졌으며, 전도사님이 잊지 않고 종을 쳐 주면 앞산에 메아리가 되어 울리던 교회마저 사라졌다.

그리고 시골 동네에 노래방과 횟집과 PC방이 들어섰다. 허름하나마 맥주를 마실 공간도 있으며, 당구장도 있다. 차라리 가지 말 걸. 가도 내 살던 곳은 보지 말 걸.

너나없이 문을 닫고 사는 도심 속의 내 집으로 돌아와 작은 내 방에서 문까지 닫고 눈을 감는다. 노래방도 부수고 횟집도 없앤다. PC방을 헐어내고 교회를 짓는다. 방학해서 할아버지 계신 시골에 찾아온 아이들이 멱감을 만큼 물도 흘려보내고, 매미 울도록 느티나무도 심는다.

그려 아직도 고향은 그대로 있는겨.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