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은 경북 영천 출신으로 1887년 북부도사를 시작으로 1900년 원수부위임겸 3남관찰사·도찰사, 중추원의관 등을 역임했다.
선생은 관직에 있을 때도 일제의 주권침탈에 맞서는 방책을 추진했지만, 일제가 '을사조약'을 통해 조선의 강점을 노골화 하자 관직에서 물러나 반일무장 투쟁만이 국권회복의 길임을 깨닫고 의병부대의 선봉장이 됐다.
정용기가 일제와 싸우다 순국하자 선생은 의병장으로 일제의 군대, 헌병분견소 등을 습격해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그러나 선생은 1907년 12월 11일 고천에서 일본군에 체포되어 일제의 간교한 회유책을 뿌리치고 장렬히 순국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 대통령장에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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