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바람
늦바람
  • 김용례 수필가
  • 승인 2022.01.27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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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용례 수필가
김용례 수필가

 

올 들어 가장 추운 날이란다. 눈까지 내렸다. 꼼짝 못하고 집안일이나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점심을 먹고 나니 날씨가 풀렸나 보다. 형님한테 운동가자는 전화가 왔다. 하던 일 제쳐놓고 꽁꽁 싸매고 파크골프장으로 갔다. 이 추운 날씨에도 구장은 꽉 찼다. 게임하는데 정신을 팔다 보니 해가는 줄도 몰랐다.

어느새 사람들이 다 빠져나가고 구장엔 우리 가족 만 남았다. 까치발을 뜨면 손에 잡힐 듯이 초저녁 달이 떠오르고 그 반대편으로 노을이 지고 있다. 붉게 지는 노을을 배경으로 철새가 무리지어 날아가고 있다. 답답하게 쓰고 있던 마스크도 벗고 우리는 멈출 줄 모르고 공을 치며 맘껏 웃으며 놀고 있다. 놀 거리가 있고 함께 놀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파크골프는 일반 골프보다 공이 크고 채는 하나만 있으면 되고 홀 길이가 짧다. 노인들만 하는 것 같은 선입견 때문에 더 거부감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남편과 시누님들은 재미있는 운동이라며 같이하자고 했지만 나는 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남편은 내 성격을 알기 때문에 몇 번 권하다가 포기했다.

그런데 형님은 골프채까지 사주면서 같이 하잖다. 그래도 버티고 있었다. 한 번만 가보자고 하는데 그것까지 버틸 수가 없어서 따라갔다. 생각보다 재미가 있었다. 늦게 배운 도둑질 날 새는 줄 모른다고 지금은 내가 먼저 서둘러 구장으로 가고 있다. 구장에 가는 날은 약속도 잡지 않고 집안일도 다음으로 미룬다. 운동경기는 반드시 승자와 패자로 나뉜다. 그 불편함이 싫어 경쟁하는 운동을 피해 왔다. 그런데 가족들끼리 하다 보니 이겨도 패해도 즐겁다. 그래도 이기면 신이 난다.

“삶을 즐겨라. 소중한 인생은 매 순간 속에 있다.”라고 한다. 이순 중반이 넘어 처음 접해 보는 생소한 것들이 많다. 세상이 변해가는 것을 바라보면 어지럽다. 인터넷이 그러하고 다양한 삶의 방식들, 예를 들면 결혼은 하지 않고 혼자서 자식을 낳아 기른다는 생각. 이만큼 세월을 걸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납득 되지 않는 삶들이 많다. 살아온 습관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어색하고 낯설어 피하고 싶었던 내 생각도 운동을 하면서 조금씩 변해간다. 습관대로 살아도 못살지는 않겠지만 이제는 내게 다가오는 매 순간을 즐기며 살아가고 싶다.

파크골프도 사람살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젊어서 실수를 하면 살면서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 그러나 나이 들어 실수하면 회복이 어려운 것처럼 파크골프도 티샷은 조금 잘못해도 두 번째 샷을 잘하면 승부를 낼 수 있다. 그리고 혼자 하는 것보다 팀을 이뤄 게임을 하면 잔재미가 있다. 이것 또한 상대방을 이기려고 욕심을 부려 크게 치면 오비를 하게 된다. 오비를 하면 두 타를 까먹게 되므로 타점에 손해를 본다. 그렇다고 또 소심해서 짧게 치면 승부를 낼 수가 없다. 파크골프의 관건은 힘 조절과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 혼자보다는 함께 어울려야 재미가 있고 몸과 마음의 힘을 빼야 잘 칠 수 있다.

그 넓은 잔디구장에 백여 명이 각각 팀을 이뤄 공을 치고 있으니 패자의 탄성과 승자의 환호성으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우리는 이 기약 없는 코로나 19의 겨울을 통과해 나가고 있다. 구장에 있는 시간만큼은 세상 시름을 잊는다.

늦바람이 용마름을 벗긴다는 속담이 있는데 나는 파크골프에 정신이 팔려 시간가는 줄 모른다. 늦바람이 무섭다는데 나 늦바람 단단히 난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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