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그리운 시대
사람이 그리운 시대
  • 김금란 기자
  • 승인 2022.01.26 19: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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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김금란 부국장
김금란 부국장

 

정호승 시인은 말한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라고.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우리는 2년 넘게 외롭고, 힘든 길을 걸어가고 있다.

설이 다가오니 그 외로움은 더 사무친다. 부모를 만나고, 형제를 만나고 친척을 만나는 일이 죄가 되는 세상.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명절날 고향을 찾지 않는 것을 불효로 여겼다. 지금은 부모를 멀리하고 형제를 멀리하는 것이 효도로 변했다.

설 연휴를 앞두고 국내서도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가 우세 종이 되면서 문재인 대통령부터 김부겸 국무총리까지 나서서 설 귀성 자제를 권고하고 나섰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최근 담화문을 통해 “이번 설 연휴 동안 많은 사람이 지역 간에 활발히 이동하고 서로 만나면 타오르는 불길에 기름을 붓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설 연휴에 고향 방문을 자제하고 집에서 조용히 휴식을 취하며 보내주실 것을 다시 요청드린다”고 당부했다.

이어 “고향의 부모님과 친지를 방문할 때는 소규모로, 짧게 머무르실 것과 마스크 쓰기, 손 씻기 등 기본 방역수칙을 반드시 지켜 주시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설날 방문한 고향에서 부모와 오랜 시간을 보내고 형제와 회포를 푸는 일이 타오르는 불길에 기름을 붓는 것만큼 위험한 일이 됐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했건만 지금은 눈에서 멀어져야 상대를 배려하고 위하는 마음으로 인식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어야 안전한 시대. 그 낯선 풍경이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학교 현장에서도 교사의 역할은 변했다.

학생들이 서로 배려하고 어울리도록 사회성을 키워주는 게 교사가 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쉬는 시간에는 어울리지 못하도록 지도해야 하고, 수업 시간에는 대화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밥을 먹을 때도 앞과 옆에 놓인 칸막이를 넘보지 못하도록 감시해야 하고 사이좋게 지낼까 노심초사해야 한다.

코로나가 발생했던 2019년 추석 명절을 앞두고 찾았던 시골 떡집에서 낯선 풍경을 접했다.

당시에도 시골엔 `불효자는 옵니다', `님아 그 IC는 건너지 마오'라는 현수막이 게시될 만큼 정부는 고향 방문 자제를 권고했다.

이런 이유로 떡집 벽에 빼곡히 붙어있어야 할 주문서가 거의 없었고 주인장은 울리지 않는 전화통만 쳐다보고 있었다.

부모는 명절이 다가오면 자식, 손주 먹이고 돌아갈 때 싸주기 위해 많은 양의 떡을 주문한다. 불효자 소리 들어가며 고향에 내려오겠다는 자식을 만류한 부모들은 떡 주문을 취소했고 떡집은 손 놓고 오지 않을 손님을 기다렸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명절이 대목이라는 재래시장과 떡집은 사람 인파는커녕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지 오래다.

알바천국이 성인남녀 1218명을 대상으로 `설 연휴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조사한 결과 38.8%가 설 연휴에도 아르바이트를 할 것이라 응답했다. 설 연휴 시즌 아르바이트에 나서는 이유는 `단기 용돈 벌이(38.3%, 복수응답)'가 가장 컸다. 명절 시즌에만 단기간 근무하고 용돈 등 부가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응답자의 15.9%는 코로나19로 인한 실업, 휴직 등으로 부족한 수입을 채우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팍팍한 삶에 지갑도 얇아지니 사람과 사람 사이 오가던 덤도 인정도 사라졌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발표한 `한국 제조업 국내외 고용동향과 과제'자료에 따르면 국내 제조업 채용 규모는 2015년 461만명에서 2019년 443만명으로 18만명 가량 줄었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사람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졌다. 사람을 멀리해야 살아남고, 살기 위한 일자리는 사라지고 있다. 그런데도 꽃피는 봄날을 기다린다.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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