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고구마
  • 정인영 사진가
  • 승인 2022.01.25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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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정인영 사진가
정인영 사진가

 

하루 세끼 모두를 고구마를 먹으며 살았다. 아침과 점심, 그리고 저녁에 어머니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구마를 밥상에 올려 식구들 앞에 내놓으시면 하나도 남김없이 먹어 배고픔을 해결했다.

한입에 넣어도 될 정도로 자그마하게 것을 밤고구마라고 불렀다. 겉은 빨간 색이면서 속은 밤같이 분이 난다고 이름을 붙였을 것 같다. 9월 하순이면 수확하여 이듬해 봄까지 먹는 고구마는 우리 집은 물론 이웃집에서도 주식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흐르늪은 50여 호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평화로운 마을이었으나, 가정마다 식량이 없어 힘들게 살았다. 가을부터 배고픔을 해결해준 게 고구마다. 쌀이 없어 늘 죽으로 끼니를 해결하던 그 시절, 아버지와 형님은 마을 앞을 흐르는 남한강변에서 자갈을 걷어내고, 리어커로 흙을 실어다 펴서 밭으로 만들고 고구마를 심었다. 워낙 가난해 비료도 없었으나 강물을 퍼다 뿌려주는 것으로 정성을 기울였다. 지금같이 크고 잘 생긴 고구마는 안되었어도 식량으로서 모자람이 없었다.

고구마는 길고 긴 겨울에 집안의 큰 재산이나 다름없었다. 집집이 싸리나무를 엮어 만든 통가리를 방에 들여놓고 고구마를 가득 담아 끼니마다 익혀서 먹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고구마를 주식으로 했으니 똥도 고구마뿐이라는 웃지 못할 이야기를 종종 했다.

그러나 고구마로 식량을 해결하는 일은 오래가지는 못했다. 아무것도 심을 수 없어 버려둔 땅에 임자가 나타난 것이다. 자갈로 뒤덮여 황폐한 땅을 일구고, 어엿한 밭으로 만든 지 3년 정도 지나서다. 사람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한 열흘 동안 흩어지는 담배연기를 바라보시며 허공에 눈을 주시는 아버지, 말이 없으신 어머니가 한나절이 지나도록 보이지 않다가 어둠이 내리기 시작해서야 돌아오시더니 늦도록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셨다.

이튿날 아침 아버지가 형님과 함께 리어커에 삽과 괭이, 삼태기를 싣고 지난번 고구마밭을 지나 더 아래쪽 강가로 갔다. 그리고 크고 작은 돌들을 파내어 리어커에 실어 버리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모래흙을 가져와 돌을 걷어낸 자리에 쏟아부었다. 며칠이 지나자 제법 그럴듯 한밭이 눈앞에 펼쳐졌다. 새로운 밭에서 고구마는 더욱 힘차게 자라 풍성하게 수확하였다. 그러나 그 밭도 3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나타난 밭주인에게 빼앗겼다. 오랜 세월동안 버려진 곳이 가난한 사람들에 의해 어엿한 밭이 되자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피땀 흘려 가꾸고 다듬어 온 고구마밭이지만 내어주는 것 외의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저 한동안 지은 고구마로 가족들의 생계를 해결한 것에 만족해야 했다.

지금 그곳에는 고구마농사를 지었던 흔적이 없다. 충주호 조정지 댐이 만들어져 모두 물에 잠겼기 때문이다. 이제 마을은 오십여 년 전의 마을에서 줄어들고 사라져가고 불과 이십여 호도 되지 않는 작은 마을로 남았다. 당시의 사람들도 생을 달리하고 없다.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밭을 만들어 고구마를 심고, 수확하던 아버지, 어머니, 형님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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