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박람회
실패 박람회
  •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박사
  • 승인 2022.01.23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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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여는 창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박사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박사

 

초등학교 시절 저는 공부 잘하는(?) 어린이였습니다. 졸업식에서는 교육감상을 받았습니다. 전교에서 일등으로 초등학교를 졸업한 것입니다. 참고로 제가 졸업한 백곡초등학교는 진천군에서 가장 작은 학교였고 저희 학년은 2개 반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아버지는 아주 늦게 귀가하셨습니다. 전교 일등으로 졸업한 아들 축하주를 드시느라 바쁘셨던 것입니다. 제가 인생에서 거둔 가장 큰 성공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이런 아들을 자랑스러워하셨고, 기가 막히게 좋다는 태몽 꿈을 믿으시며 청주로 유학(?)을 보내십니다. 아버지의 꿈에는 법복을 입고 있는 멋진 미래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 꿈은 완전한 실패로 끝났습니다.

서울에 있는 대학 진학의 꿈은 충북대학교에 입학하는 것으로 실패했습니다. 노벨 물리상(?)을 꿈꾸던 대학 생활도 실패했습니다. 반도체 회사나 연구소가 아니라 YMCA라는 NGO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제 꿈은 바뀌었습니다. 사회를 변화시켜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사회 활동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꿈은 4년이 지나기 전에 실패합니다. 시민 활동가의 삶을 포기했고 이름도 생소한 종합사회복지관의 직원이 되었습니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사회복지분야에서 성공하고 싶었지만 그 도전도 실패했습니다. 성공한 사업가를 꿈꾸면서 `레크리에이션 문화센터'를 창업했습니다. 처음에 잘 나가던 새로운 도전도 함께 일하던 사람들의 잦은 교통사고 여파로 실패합니다. 이렇게 제 인생 1막은 실패했습니다.

인생 2막은 계획에도 없던 주성대학(지금의 충북보건과학대학) 사회교육원 연구원으로 일하게 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대학이라는 큰 조직에 일원이 되면서 저 자신도 몰랐던 능력이 발현됩니다. 덕분에 연구원에서 연구교수로, 연구교수에서 전임교수로 자리를 옮깁니다. 여가와 레크리에이션, 이벤트, 문화분야에서 일할 자랑스러운 제자들을 만났고 평생교육과 청소년활동, 문화와 지역 축제분야에서 나름 전문가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평생 일할 것 같던 대학교수도 15년 만에 실패로 끝납니다. 그리고 여가문화연구소라는 `독립 연구소' 설립에 도전합니다. 아직은 재미있게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니 실패는 잠시 뒤로 물러난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제 삶은 실패의 연속이었고, 그만큼의 새로운 도전이 있었습니다. 삶은 어쩌면 실패와 도전의 변증법적 발전일지도 모릅니다.

이세돌과의 바둑 시합으로 유명해진 알파고는 사람들이 만든 바둑 기보라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바둑을 둡니다. 데이터가 늘어날수록 승률이 올라갑니다. 그런데 이후에 출시된 알파고 제로는 인간의 데이터를 제공해 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대신에 엄청난 처리 속도를 기반으로 혼자서 바둑을 두면서 스스로 실패의 데이터를 생산합니다. 사람이 바둑을 둔 이래로 어마어마한 시간을 투자해 생산한 경험보다 더 많은 실패의 경험을 불과 며칠 만에 축적한 것입니다. 실패를 가속화 한 것입니다. 알파고 제로의 엄청난 실패 경험 축적 능력이 성공의 실력이 된 것입니다. 알파고와 알파고 제로의 바둑 대결은 알파고 제로의 완승으로 끝납니다. 실패가 성공을 이긴 것입니다.

행복한 사회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실패한 만큼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사회는 행복합니다. 실패를 삶의 자산으로 만드는 사회는 성장합니다. 성공 신화보다 실패 경험이 소중합니다. 지식축적은 실패의 양(量)입니다. 의미 없는 실패는 없습니다. 실패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자산으로 활용하는 인식 전환이 필요합니다. 실패를 응원하고 재도전을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어찌 보면 삶 자체가 실패 박람회입니다. 실패에 실패하지 않는 사회 `실패 박람회'에 응원 날개를 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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