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고 싶어요
안기고 싶어요
  • 박영자 수필가
  • 승인 2022.01.19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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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박영자 수필가
박영자 수필가

 

아들은 정(情)이 많은 아이다. 가끔씩 어미를 만나는 날이면 만나자마자 나를 제 품에 꼭 안는 것이 그의 인사법이다. 어릴 때는 그 애가 내 품에 꼭 안기는 것을 좋아하더니 어느 때부터인가 그 애의 키가 훌쩍 자라서 내가 그의 품 안에 쏙 들어가게 되었다. 나를 품 안에 꼭 안고는 “별일 없지요? 힘들지요?”속삭인다. 내가 할 말을 제가 다 해버리면 그 말 한마디에 모든 시름을 다 잊는다.

그 애가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생겼다기에 데리고 오라고 한 날이었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아들은 나를 제 품에 꼭 안았고, 아가씨는 미소를 지으며 우리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민망하여 그 애의 팔을 풀고 아가씨를 보고 웃으며 “어서 와요.”라는 짧은 인사말을 건넸을 때 “어머니, 왜 저는 안 안아주세요?”하는 의외의 말에 당황하며 내가 얼른 그 아가씨를 안았지만 나는 어느새 그 애의 품에 안겨 있었다. 이것으로 나는 아가씨를 더 볼 것도 없이 며느릿감으로 흡족했다. 안아달라는 한마디에 모든 말이 다 함축되어 있었기에 긴말이 필요 없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별 탈 없이 돈독한 시어미와 며느리 사이로 지내고 있는 것은 안아주는 특효약 덕분이 아닐까.

그 애들이 결혼하고 아이 둘을 낳았고, 맞벌이의 고충을 너무 잘 아는 나는 60이 넘은 나이에 3년 8개월 동안 아이 둘을 키워주는 일도 기쁘게 해냈다. 이제 아들네 네 식구가 내 집에 오는 날은 현관 앞에서 줄을 서서 차례로 안아주고 인사말을 건네느라 한참이 걸린다.

세균이라는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악귀 때문에 살벌하고 고약한 세상이 되다 보니 자식들과 만나는 일도 쉽지 않아 전화기만 바쁘다. 명절이 되어도 개 보름 쇠 듯하는 세상이다. 어찌어찌 어렵게 만나는 날도 우린 덥석 안지를 못한다. 손을 씻어야 하고 손소독제를 뿌려야 하고 서로를 염려하는 마음에 안지 못하고 마스크를 쓴 채 겨우 손을 잡는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도 머쓱하여 끌어안고 싶은 마음을 억눌러야 하는 엉거주춤 어색한 자세가 되고 만다.

쌍둥이를 잉태한 어느 산모가 조산을 하였다. 아기들은 인큐베이터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며칠이 지나자 먼저 세상 빛을 본 형의 상태가 좋지 않아 가족들과 의사들의 마음을 졸이게 했다. 고심 끝에 한 의사가 제안하기를 두 형제를 한 곳에 넣어 보자고 했다. 인큐베이터에 함께 넣어준 동생은 형의 목에 손을 대고 누워 있었다. 신기하게도 형은 차차 회복되어 두 아기는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의사의 처방이 명약이 된 것이다. 미국에서 있었던 실화라고 하니 감동이 아닐 수 없다.

안기고 싶다. 포근하게.
자식들의 넓은 가슴에 안겨 따뜻한 체온을 느끼고 싶다. 그럴 수 없어 허전하다.
안아주고 싶다. 마음을 다하여 가족들을 품어주고 싶다.
그럴 수 없어 마음이 시리다.
얼싸안고 싶다. 친구들과. 두 팔 벌려 하나가 되는 뜨거운 몸짓으로 포옹하고 싶다.
그럴 수 없어 외롭다.
전화선을 타고 오는 가족과 친구들의 목소리는 반갑지만 눈앞에 보이지 않아 답답하다.
보내오는 카톡보다 부둥켜안고 웃고 떠들고 싶다. 함께 먹고 마시고 싶다.
그 날을 위해 나의 기도는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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