脫 프로그램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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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22.01.19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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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룡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인공지능을 장착한 로봇이 인간에게 묻는다:내가 모든 노동이나 생각을 대신 해주면 당신은 뭐하고 살 겁니까?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인공지능을 장착한 로봇과 차별화된 인간의 고유한 삶은 어떤 것일까? 나는 최고 사양의 완전한 로봇일 뿐인가?

사람은 말한다. 로봇은 프로그램화된 존재라서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아. 사람은 프로그램화된 존재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인간도 입력된 정보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사는 게 아닐까?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완성으로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인간이 발현할 수 있는 모든 특성과 행위를 프로그램의 산물로 보는 것이 가능해졌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인간도 프로그램화된 존재라고 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인간과 로봇은 존재론적으로 차이가 없는 걸까? 로봇과 달리 인간에게는 입력된 정보대로 살지 않을 가능성이 열려 있다. 곧 입력된 프로그램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 이 역량이 뭐냐고? 그게 자유다.

자유? 자유로운 삶은 어떤 거지? 속박에 매이지 않은 삶이지. 인간을 얽맨 속박이 뭘까? 옛 선인들은 이런 질문에 대해 고민한다. 소크라테스, 예수, 부처는 모두 얽매이지 않은 삶을 추구한다. 소크라테스는 인간들이 세속적인 욕구(부, 권력, 명예)에 사로잡혀 산다고 비판한다. 스스로의 삶을 검토해 자신을 내세우는 삶이 무가치하다는 걸 자각하고 살아야 하는데 스스로를 절대화하는 방식으로 산다. 그리하여 죽기 살기로 경쟁하는 삶에 몰입한다. 우리 모두가 살면서 느끼는 거지만 생존경쟁의 장에서 무조건 이기기 위한 몸부림이 자유롭다고 할 수는 없다. 이런 삶은 속박된 삶이다. 자신을 검토하면 스스로의 무지를 자각할 수 있고, 그래야 이런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 수 있다.

예수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고 말한다. 진리가 죄에서 벗어나게 해주기 때문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다. 죄의 정체는 무엇일까? 모든 것의 모든 것과의 분리, 소외가 죄의 정체이다. 분리되고 소외된 존재의 삶은 어떨까? 각박하고 비참하다. 서로가 물고 뜯는 삶이 소외된 삶이다. 경쟁 가운데서 인간은 서로가 서로에게 얽매여 산다.

왜 이렇게 됐을까? 어울려 사는 삶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왜 포기하게 됐을까? 자신이 주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속박된 존재가 된다. 내가 주인이 아님을 알면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나를 버려야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다. 나를 버리는 작업이 인간을 구속하는 프로그램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부처는 모든 태어난 것들이 세상에 태어나게끔 프로그램화되어 있다고 말한다. 왜 태어나게 되어 있는데? 그건 업(業) 때문이다. 곧 업에 매여 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없이 세상에 태어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업의 정체가 뭔데? 그건 무지함, 밝지 못함이다. 무지하고 밝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에 태어날 가능성을 없애지 못하고 태어날 수밖에 없다. 태어나는 행위에 자유가 없기 때문에 죽는 것에도 자유가 없다. 곧 죽기 싫어도 죽을 수밖에 없다. 태어나기 싫어도 태어나야 하고 죽기 싫어도 죽게끔 프로그램화된 삶의 방식에 매여서 사는 것이 인생이다. 이런 얽매임으로부터 벗어난(解脫) 삶이 대자유의 삶이다.

그게 죄가 됐든, 업이 됐든 인간은 누구든 특정방식으로 조직된 프로그램에 맞춰서 산다. 프로그램화된 존재라는 점에서 인간은 로봇과 다르지 않다. 위의 세 사람은 인간이 숙명처럼 뒤집어쓰고 있는 굴레(프로그램)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고자 한다. 곧 가장 인간답다고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삶을 추구한다. 그 자유는 자신을 내세우거나 실현하는 과정에서가 아니고 자신을 포기하고 버림으로써 획득된다. 자기를 놓는 일이 가장 인간다운 일일 것이다.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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