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를 넘어 다시 `희망'으로
`금지'를 넘어 다시 `희망'으로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2.01.18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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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지난해 한 지자체로부터 `금지'를 공식적으로 명령받은 적이 있다.

여태 까닭을 알지 못하는 `금지'에 대한 명령의 예시는 `새로운 구상 등'을 하지 말라는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구상을 거쳐 제안까지 진행된 프로젝트의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는 않겠다. 다만 그것이 `다른 용무'로 판단되었다는 사실을 지금도 받아들일 수 없다. 지자체가 나에게 부여한 역할에는 분명히 `정책 방향의 제시', `지방자치단체 사업 중 부서별로 추진되는 사업의 연계·조정'이 뚜렷하게 약정되어 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금지'에 대해 설명을 하거나 또는 듣거나 할 의지가 없는 소통 부재의 절벽을 설득하기는 너무 어렵다. 하물며 그럴 위치에 있지도 못한 처지도 한몫한다.

지금 우리는 `금지'가 불가피한 역병의 재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집합금지 행정명령이거나, 영업시간 제한 등의 조치가 근본적인 자유와 생계의 위협에 이를 만큼 심각함에도 `금지'에 순응하는 것은 공공과 공동의 안녕을 위한 양보와 동참에 해당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적용되고 강요되는 세상의 모든 `금지'는 근본적으로 불온하다.

`금지'가 명령된 이후 생각의 회로는 뒤틀렸고, 의욕은 좀처럼 되살아나지 않았다.

도시의 정체성에 대한 천착이거나, 팬데믹을 극복하기 위한 지방도시의 대처방안, 또는 코로나19 이후의 대변혁에 대한 고민 등 여러 아이디어의 경로 역시 차단되는 몸살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그 원인은 내 여린 멘탈과 외부로부터 작용된 `금지'에서 비롯된다.

2022년이 시작된 이후 세 번째 새해의 다짐을 쓴다. 그리고 오늘 <수요단상>으로 새해를 맞는 각오를 마감하면서, `금지된 것'을 `금지'하고자 한다. 일상으로 건전하게 돌아가겠다는 뜻이다.

일몰 뒤에 밤이 있고, 일출로 이어지는 흐름이 없는 날은 단 `하루'도 없다. 그러나 지난해 마지막 일몰과 새해의 일출을 겪는 일은 다른 `하루'와 확실히 다르다.

송년의 일몰과 새해 첫날 우암산 위로 솟아오르는 일출을 맞이하며 모든 지나간 것들과의 화해를 다짐한다. 기억은 결코 고쳐 쓸 수 없는 것이건만, 새해가 되어 과거를 반성하거나 용서하는 일 없이 다가오는 시간을 편안하게 맞을 수는 없는 일이다.

희망은 그런 마음가짐에서 생겨난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정확한 사랑의 실험>에서 “삶에 희망이 있다는 말은, 앞으로 좋은 일만 있을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 우리의 지난 시간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뜻”이라고 했다.

2022년을 맞으며 나 또한 희망을 뚜렷하지 않은 도시와 미래에 대한 바람으로만 품지 않을 것이다. 어떤 어려움에도 흔들림 없이 나(자아)를 지키며,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의 가치를 소중하게 보듬는 성찰의 나날로 올 한해가 채워지기를 소망한다.

그동안의 나는 새해가 될 때마다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만을 어쩌면 이토록 어김없이 키워왔는가. 나에게 `금지'되는 것은 내가 모르는 원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동안의 나는 변할 수 있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분별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무모함으로 세상을 난감하게 하지 않았는지.

“희망을 의심할 줄 아는 진지함, 희망의 근거를 찾아내려는 성실함, 대안이 없음을 고백하는 용기, 추상적인 도덕이 아닌 현실적인 차선을 선택하는 긴장 속에서 우리는 다시 희망을 찾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가치는 그가 품고 있는 희망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김근태의 말을 통해 2022년 새로운 희망의 경로를 비추는 샛별을 찾는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이제 자신의 허물과 과오를 인식하며 자아를, 그리고 세상 만물에 대한 성찰을 통해 미래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양귀자 소설<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주인공 강민주의 외침, “나는 나를 건설한다. 이것이 당신들의 비굴한 굴복과 내 태도가 다른 점이며 절망의 텍스트는 그러므로 당신들의 것이다”는 2022년 시작의 다짐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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