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에서 배우다
결핍에서 배우다
  • 김일복 시인
  • 승인 2022.01.16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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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김일복 시인
김일복 시인

 

허술하고 어설픈 나다. 햇살도 나를 보면 배시시 웃는다. 누군가 그랬다. 너는 말할 때 표정 관리가 안 된다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대강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바보같이 `내가 알고 있는 나'로 지내왔다.

성격이 별난 건 아니지만 소극적이어서 남들 앞에 나서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항상 뒤에서 구경만 하다 타인의 말 한마디에 쉽게 상처받곤 했다. 상처 위에는 이기적이고 욕심, 교만, 질투심이 쌓이고 결핍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하는 일마다 되는 게 없었다. 타인과 대화에서 덩그러니 혼자 있는 듯했다. 정돈되지 않은 머릿속은 심한 통증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 적이 많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미래의 인생을 살아 본 경험이 있으면 좋겠다는 꼼수를 부려 본 30대 시절의 초상화다.

임인년(壬寅年) 새해가 밝았다. 천륜(天倫)의 나이를 훌쩍 넘긴 지금 사회 초년생이었던 당시 혼돈과 결핍의 시간을 메우기 위해 무모하게 세상을 대했던 시간, 바보같이 살지 않으려고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나를 대범하게 만들어내고 내 몸에 깃발을 세우는 것이라고 혼자 판단했다.

그런 결핍으로 불안한 마음에 어떻게든 일을 만들어놓고 해결하자는 회피성 고집이 생겼다. 그래서 닥치는 대로 가족을 위해 일해왔다. 그렇게 사는 것이 맞는 줄 알았다. 누구나 다 그렇게 사는 것인데 나는 삶을 잘못 해석했다.

어쩌면 오히려 결핍이나 불안이 나의 삶을 정교하도록 욕심, 교만, 질투를 버리게 했는지 모른다. 돌이켜보면 잘못한 것도 있었고, 배운 것도 있다. 자기감정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내면의 밑바닥에 있는 지금의 나를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것, 타인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 기다려 주는 것, 참아주고 용서하는 것,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또 다른 결핍을 메우는 일이라 우겨본다.

완전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는 결핍을 메우려 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큰 성벽을 올라가지 않아도 저절로 오를 수 있는 이유는 내가 나에게 잘하고 신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상처 입은 굴이 진주를 만든다.' 미국의 사상가 에머슨의 말이다. 에머슨은 자연과의 접촉에서 외로움과 기쁨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자연은 인간에게 혜택을 주며, 아름다움을 주며, 만물을 표현하는 언어를 주며, 시련을 통한 훈련을 준다고 했다. 에머슨에게도 시련과 아픔이 있었기에 훌륭한 시인이 되었다고 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결핍으로 인한 고된 역경은 진실한 삶을 살게 하였다. 더 큰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헛되이 살지 않았으면 괜찮았다. 내 안의 보잘것없음에 대해 사이좋게 지내는 일이나, 의사 표현 능력을 배우는 일이 우선이었다.

결핍은 누구에게나 있다. 결핍은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지거나 모자람을 뜻한다. 환경이나 관점에 따라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기에 행복을 지향하는 방법도 제각기 다를 것이다. 앞으로도 결핍을 경험하면서 나 자신의 결핍이 값진 선물이 되도록 사랑으로 메워가 보자. 용맹스럽고 슬기로운 호랑이해를 맞아 우리의 삶이 풍부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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