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산책
우암산책
  • 김경수 시인
  • 승인 2022.01.12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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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경수 시인
김경수 시인

 

거기 산이 있었다. 널브러진 소 바위가 꿈을 베고 누워있는 산이 있었다. 빼어나게 수려하지는 않지만 둥글둥글 소박하고 거짓 없이 우직한 산이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도 산을 닮아 욕심부리지 않고 모나지 않았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는 겨울 오랜만에 영창은 우암산 우회길로 산책을 나섰다. 그곳에 가면 청주를 한눈에 만날 것 같았다. 발걸음이 언덕길 초입에 이를 무렵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던 사찰이 눈에 들어왔다. 왠지 예전과는 어딘가 다른 모습으로 보였다. 하긴 부처는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했다. 그 말에 공감이 갔다. 사찰 옆을 스치듯 몇 발자국 옮기면 3.1공원에서 선열들의 숨결 소리가 들려왔다. 말씀은 없어도 그분들은 늘 곁에 있었다.

가볍게 숨이 차올라 등산로 한켠 벤치에서 잠시 휴식의 즐거움을 만끽하기로 하였다. 풋풋하고 상큼한 바람이 향수를 타고 불어왔다. 영창은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어둠이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 푸른 공기를 마시며 우암산에 올랐다. 그리고 해가 뜰 무렵 정상에서 산을 부르면 어디선가 소 울음 워낭소리를 울리며 우암산이 일어났다. 찬란한 아침이었다. 잠시 눌러앉았던 몸을 일으키며 산책을 이어갔다. 드디어 청주시내의 전경이 서서히 눈에 들어왔다. 새삼 청주가 그동안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화는 변화를 일으키고 그 변화된 모습 속에서 사람은 세상을 바꾸고 또 그렇게 사람은 바뀌어져 갔다. 실로 그 누구라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의미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혼자 바꾸는 것도 아니고 한 시대에 바뀌고 마는 것도 아닐 것이다. 모두가 조금씩 한순간을 이어가며 바꾸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것은 고사하고 세상이 바뀌었는데 자신이 바뀌지 않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였다. 바뀔 때 바뀌는 것도 스스로의 몫을 그 시대에 맞게 물결을 타고 살아가는 방법일 것이다. 아닌게아니라 지금은 청주와 청원이 하나가 되어 그 끝을 산책로에서 가늠하기가 어렵겠지만 예전에는 이 자리에서 청주가 대충 한 눈에 들어왔었다. 영창은 이곳에서 태어나 줄곧 살아온 토박이었다.

그렇지만 한때는 청주를 뜨고 싶은 때도 있었다. 그것이 욕망이든 유혹이든 미움이든 상관없었다. 하지만 끝내 떠나지 못했다. 무슨 미련이 발목을 잡은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돌아보면 그저 웃음이 새어 나올 뿐이었다. 청주가 훤히 트인 곳에서 걸음을 멈췄다. 수암골 이었다. 어느 해 어느 드라마 촬영이 있고 난 후 새롭게 명소로 부각된 곳이었다.

또 한 번 변화를 느끼게 해주는 곳이었다. 전망대 위에서 청주를 바라보았다. 저만치 무심천이 수천 년을 굽이굽이 감싸듯 유유히 청주를 끌어안고 휘돌아 흘러가고 있었다. 청주는 그만큼 유서가 깊은 고장이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삶의 터전이 존재한다. 더구나 그곳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다면 그곳에 어제와 오늘이 공존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시간을 넘을 때마다 다른 세상에서 살아왔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시간이 지나 시대가 바뀌고 그 공간 속에서 무수한 일들이 부딪치고 어우러지며 갈등과 조화가 변화를 이끌어 냈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터전은 변화로 거듭났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그곳에 대한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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