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기
비우기
  • 강석범 충북예술고등학교 교감
  • 승인 2022.01.12 17: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예술산책
강석범 충북예술고등학교 교감
강석범 충북예술고등학교 교감

 

정말 웅장하다. 14m(가로)×20m(세로)×11m(높이) 청주시립미술관 특별전시장은 단일 전시장 규모로는 보기 드문 크기다. 특히 과거 방송국 메인 공개홀로 쓰였던 까닭에 워낙 전시장 천고가 높아 웬만한 작품으로 공간을 장악하기란 쉽지 않다.

이 거대한 공간에 딱 한 개의 또 다른 우주가 공중에 떠 있다. 삼베 불상으로 이루어진 사방 5m 크기의 거대한 `원' 덩어리다. 작품 코드에 맞춰 전시장 내부는 낮은 채도의 회색으로 전부 새롭게 도색 되었고, 작품을 위한 최소한의 것만 남기고 조명이 전부 꺼져 있어 전시장 내부가 그야말로 불가에서 말하는 극락 인지 지옥 세계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다.

이처럼 묘한 분위기의 전시장에 들어온 관람객은 순간 숨이 멈춘다. 나도 물론 그랬다. 조명 작업까지 마치고 처음 이 공간에 들어왔을 때 등골이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작품이 주는 에너지가 엄청나다. 작품 설치작업만 매일 밤늦게까지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대웅전에 있어야 할 불상 108개가 가느다란 와이어에 매달려 이리저리 뒹굴다시피 공중에 매달렸다. 이 매달림 들은 각기 계획적으로 커다란 가상공간에 배치되고, 그들은 결국 5m 원형 형태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실제 작품에 가까이 다가가면 불상이 그리 빼곡히 자리 잡고 있진 않다. 공간이 듬성듬성 제법 큼직하게 비어 있다. 작품 제목 `空'의 표면적 뜻을 이해하는 순간이다. 작품 제목의 한자어 `공'은 비다, 헛되다, 공허하다, 쓸데없다 등 불교적 뜻의 의미를 많이 갖고 있다.

속이 텅 빈 채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불상 덩어리를 보고 있노라면 불상이 모여 원형을 만들고 있는지, 아니면 원형 안의 불상들만 남기고 나머지 불상을 다 털어낸 공간이 그 형태를 만들고 있는지, 그 모호한 선택을 관객에게 던진 작가의 기발한 재치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전시장에 발을 딛는 순간 그 공간은 현실 공간이 아니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작품이 아닌 공간을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일상에서 우리가 모두 집착하고 있는 욕심, 즉 채우고자 하는 집념에 가까운 집착들에 대해 비우기를 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보기에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만든 공간은 극락과 지옥의 중간쯤 되는 공간으로 보인다. 이유는 마음먹기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극락이요 누군가에게는 지옥으로 보일 수도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세상사 모든 게 다 공허하고 쓸모없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모든 게 다 쓸모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다 비울 수는 없겠지만 조금씩이라도 내려놓고 비우는 노력을 해야겠다는 이야기를 작가는 작품과 작품을 둘러싸고 있는 공간을 빌려 조용히 이야기한다.

“선생님 개막식 사회 좀 봐주시죠?” 난데없이 작가가 다가와 속삭인다. “엥? 갑자기?” 잠시 당황스럽다. “자 잠깐만 주목해 주시죠~ 간단히 개막식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음 음, 지금부터 장백순 작가님의 청주시립미술관 초대전 개막식 행사를 시작하겠습니다.” 미리 준비된 사람처럼 나는 또 개막식을 진행한다.

개막식을 진행하는 동안 일반 갤러리들은 개막행사에 아랑곳하지 않고 작품 주변에 모여 있다. 일부는 연신 휴대폰으로 작품을 담느라 열중한다. 사람들은 `空' 앞에서도 허기진 사람처럼 여전히 채우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