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죽의 추억
팥죽의 추억
  • 추주연 충북단재교육연수원 교육연구사
  • 승인 2022.01.11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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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추주연 충북단재교육연수원 교육연구사
추주연 충북단재교육연수원 교육연구사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의 결말을 기억하는가?

나무꾼의 아내가 된 선녀는 두 아이를 낳고도 늘 고향인 하늘을 그리워하다 날개옷을 입고 아이들과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선녀를 찾아 하늘로 따라 올라간 나무꾼은 지상에 홀로 계실 어머니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 나무꾼은 선녀가 내어준 천마를 타고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뵈러 간다.

절대 땅을 밟지 말라던 선녀의 당부대로 나무꾼은 말에서 내리지 않았다. 그러나 좋아하는 팥죽 한 그릇 먹고 가라는 어머니의 간청에 말 위에서 팥죽을 먹다 뜨거운 팥죽을 말잔등에 쏟고 말았다. 깜짝 놀라 앞발을 치켜들고 몸부림치던 천마는 나무꾼을 떨어뜨리고 하늘로 돌아가 버렸다. 사라진 천마를 바라보며 슬피 울던 나무꾼은 결국 수탉이 되어 지금도 하늘을 향해 슬피 운다고 한다.

어렸을 적 팥죽의 깊은 맛을 알지 못할 때는 팥죽이 뭐라고 나무꾼은 선녀의 당부를 저버렸을까 싶었다.

헌데 지상에 남겨진 나무꾼은 마냥 불행하기만 했을까? 남편 없이 두 아이를 길러야 하는 선녀도, `팥죽만 주지 않았더라면' 자책했을 어머니도 모두 불행해졌을까? 나무꾼과 선녀는 각자의 고향이 더 편했을지도 모른다.

하늘에는 어머니가 끓여주는 팥죽도 된장찌개도 없지 않은가? 나무꾼은 어쩌면 팥죽을 핑계로 고향에서 어머니와 함께 사는 삶을 선택한 것은 아닐까?

드디어 돌아온 동짓날, 아침부터 울리는 문자 메시지는 팥죽 먹으러 오라는 엄마의 성화다. 팥과 찹쌀을 일찌감치 준비해 두었단다. 엄마는 늦가을부터 시장을 들락거려 눈여겨 봐두었던 해팥이며 햇찹쌀을 공수해 온 모양이다. 연달아 날아오는 문자에 엄마의 달뜬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제 지난해가 되어버린 2021년의 동지팥죽은 엄마의 기억 속에서 한 해 동안 푹 끓여진 팥죽이다. 일 년 전 이맘 때 당신이 끓여준 팥죽을 먹고 쓴 딸내미 글을 읽고 그동안 줄곧 달큰하고 새알심 쫀득한 팥죽 끓여줄 생각을 해왔던 것이다.

내가 들은 엄마의 기억은 제한된 몇몇 시간대에 머물러 있다. 고장 난 축음기처럼 엄마의 추억 레코드판 레퍼토리는 뻔하다. 동생을 들쳐업고 근심 걱정 없이 골목길을 누비며 놀던 어린 시절, 고된 시집살이로 힘들었지만 삼남매가 기쁨이었던 시절. 그런 엄마의 기억에 허겁지겁 팥죽 한 그릇 뚝딱 해치우는 딸과 보내는 동짓날이 추가되었다.

내 추억 파일에 저장될 이번 동짓날은 팥죽이 두 그릇이다. 연수원의 급식 서프라이즈 메뉴로 팥죽이 등판했다. 엄마표 팥죽을 좋아하는 동료를 위해 영양사님과 조리사님들이 새벽부터 팥죽을 쑤어 내준 것이다. 팥죽이 뭐라고. 괜스레 울컥해진다.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짓날, 아랫목처럼 뜨뜻한 팥죽의 추억을 서리서리 챙겨둔다. 언젠가 춥고 외로운 밤에 굽이굽이 펼쳐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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