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린 밤
눈 내린 밤
  •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2.01.10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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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삭막하고 수척한 겨울을 순식간에 화사하고 풍성한 모습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눈이다. 이러한 눈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각자의 처경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겠지만, 눈 자체를 혐오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할 것이다. 깊은 산 속 외딴집에서 맞은 눈은 고립감을 한껏 증대시킬 것이지만, 이것이 외로움을 촉발시키기도 하고 자유로움과 한가로움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감옥이라는 고통과 구속의 공간에서 눈 내린 풍광을 내다본다면 어떤 심경이 들런지 한용운(韓龍雲)의 시를 한 수 보기로 한다.



눈 내린 밤(雪夜)

四山圍獄雪如海(사산위옥설여해) 사방으로 산이 감옥을 둘러쌌는데 눈이 바다 같고
衾寒如鐵夢如灰(금한여철몽여회) 이불은 차가워 무쇠 같고 꿈은 재와 같네
鐵窓猶有鎖不得(철창유유쇄부득) 철창으로도 오히려 가둬두지 못하는 것 있으니
夜聞鐘聲何處來(야문종성하처래) 한밤에 들리는 종소리는 어디런가?

승려로서 독립운동에 신명을 바치는 삶의 길을 걸었던 시인은 감옥에 갇혀 지내는 것이 숙명과도 같은 일이었다. 철창으로 내다보이는 감옥 밖 세상은 사방이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또 하나의 감옥이었다. 감옥과도 같은 사방의 산들이 바다처럼 보인 것은 쌓인 눈 때문이었다. 산은 가로막는 것이라면 바다는 트여 나가는 것이다.

시인은 눈 덕분에 모처럼 해방감을 맛보았으리라. 그러나 이런 해방감도 잠시였고, 시인이 처한 현실은 냉혹하였다. 한겨울인지라 감옥 안의 이불은 차갑기가 마치 쇠붙이에서 느끼는 한기 못지않았다. 그래서 꾸는 꿈조차도 식은 재처럼 느껴졌던 것이리라. 이런 절망적인 환경 아래서도 시인은 결코 굴하지 않는 결기를 지니고 있었다. 한밤에 감옥 밖 어디선가에서 들려 오는 종소리는 제아무리 단단한 쇠창살이 가로막는대도 막을 수가 없다는데, 이 종소리는 기실 시인의 마음속에서 솟구쳐 나오는 소리였던 것이다.

온 산에 가득 쌓인 눈은 겨울의 삭막함을 일거에 덮어 버린다. 갇혀 살기 쉬운 겨울의 답답함도 시원하게 날려 버린다. 더구나 감옥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맞는 겨울의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눈은 푸근한 해방감을 가져다주는 천사와도 같은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원대 중국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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