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타인
완전한 타인
  • 반지아 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 승인 2022.01.09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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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반지아 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반지아 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아이들을 재우고 난 후 무엇을 하냐는 질문에 무심코 책을 읽는다고 했더니 모두의 눈빛에 놀람이 비친다. 잠깐의 놀람이 지나고 나면 그 뒤에 있던 질문이 쏟아져 내린다. “무슨 책?”“피곤하지 않아?”“드라마 안 봐?” 답은 간단하다. 근무와 육아가 모두 끝나면 몸이 천근만근이라 아이들과 같이 잠들기 일쑤고, 드라마는 취향에 맞지 않아 안 본다. 그들이 집중한 것은 내가 책을 읽는다는 사실뿐이고, 간과한 것은 그 횟수가 내 마음처럼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짜 사실은 이 대화에서 의미가 없다. 내가 책을 읽는다고 말하는 순간 그들의 머릿속에 나는 책 읽는 사람으로 엄청난 지성을 추구하는 사람(혹은 이미 책을 통해 광대한 지식을 얻은 사람)처럼 인식됐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한 사람에 대한 잘못된 프레임이 쉽게 씌워진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전혀 다를 수 있다. 지식이나 지성과는 거리가 멀게 그저 재미있어서 읽기도 하고, 아이가 책과 가까이했으면 하는 마음에 솔선수범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읽기도 한다. 읽다 보면 부수적으로 알게 되는 것들이 많지만 책을 읽는 행위만으로 내가 누군가의 놀라움을 살 정도의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 진실이다.

그들의 반응이 이해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살다 보니 다른 사람에게 잘못된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근래 깨달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알고 지낸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 나는 차마 엄두도 못 낼 두꺼운 인문학 책을 읽는 모습을 보고 `와, 저 사람은 머리가 진짜 좋은가 봐'라고 감탄하기도 했고, 늘 친절하고 예의 바른 어떤 사람을 보고는 `저 사람은 정말 법 없이도 살 거야, 어쩜 저렇게 깍듯할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착각이었다. 전자의 사람은 그저 나와 독서의 취향이 다를 뿐 일머리가 좋다거나 센스가 뛰어나거나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고, 후자의 사람에게는 어디에 내놔도 부끄러울 비밀을 가슴 깊이 숨겨두고 사는 사람이었다.

이쯤 되면 사람에 대한, 인간에 대한 깊은 회의감이 든다. 나 자신의 본연의 모습이 아닌 자신들이 만든 모습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때문에, 또한 내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서 전혀 예상치 못한 비밀이 새어나올 때마다 어떤 사람을 믿을 수 있는가, 도대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절망이 내면에 조금씩 쌓여 곧 침몰해버릴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작가 김영하는 저서 `말하다'에서 이런 말을 했다. `마흔이 넘어서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친구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거예요. 잘못 생각했던 거죠. 친구를 덜 만났으면 내 인생이 풍요로웠을 것 같아요. 쓸데없는 술자리에 시간을 너무 많이 낭비했어요. 맞출 수 없는 변덕스럽고 복잡한 여러 친구의 성향과 각기 다른 성격 이런 걸 맞춰주느라 시간을 너무 허비했어요. -중략-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은 많은 친구와 멀어지게 되더군요. 그보다는 자기 자신의 취향에 더 귀 기울이고 영혼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드는 게 더 중요한 거예요.'

작가의 말대로 올 한해는 남들이 보는 나, 직장을 옮기거나 인사발령이 날 때면 기다렸다는 듯이 만들어지는 소문 속의 나에게 관심을 두고 일희일비하기보단 진정한 나의 모습, 나의 영혼을 가꾸는 데 집중해보고자 한다. 주위를 살피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아끼고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보듬고 사랑하되 그들의 일부만 보고 섣불리 판단하는 좁은 식견과 중도가 없는 인간관계는 걷어내려 노력하고자 한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가졌던 기대,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던 어떤 부분으로 인해 받을 상처가 조금은 옅어져 내 삶이 한결 평안해지지 않을까.

거울을 한번 보고 주변을 돌아본다. 어쩌면 당신이 아는 나와 내가 아는 당신은 완전한 타인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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