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세요. 오늘 상회입니다
어서 오세요. 오늘 상회입니다
  •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 회장
  • 승인 2022.01.06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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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이야기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 회장
신은진 한국독서심리상담학회 회장

 

어스름한 새벽에 잠이 깨면 베란다로 나가 늘어진 커튼을 동여매며 하루를 시작한다. 허리끈을 질끈 묶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아낙처럼 비장하게 오늘을 맞이한다. 아파트 앞 동의 작은 창으로 쏟아지는 불빛 위로 안개가 걷히듯 어둠이 물러가는 것을 보며 몇 초뿐인 시간이지만 경건한 기분이 든다. 마치 오늘을 마시는 것처럼 12월의 오늘과 1월의 오늘은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이지만 무엇인가 다른 느낌이 든다.

그림책 오늘 상회(한라경 글·김유진 그림·노란상상)를 처음 만났을 때 아침을 맞는 그 순간이 떠올랐다. 오늘 상회는 새벽이면 불을 밝히고 오늘을 파는 가게이다. 주인은 새로 시작하는 이름도 있고 어제는 있었지만, 오늘은 없는 이름이 적힌 병을 닦는다. 그리고 손님을 기다린다. 첫 손님으로 바쁜 회사원이 오고, 손톱 밑이 까만 노인과 진한 향수를 뿌린 아저씨도 온다. 주근깨 소년과 소녀도 오늘 상회를 찾는다.

그리고 오랜 시간 오늘 상회를 찾던 머리카락이 하얗게 센 할머니도 오늘 상회로 발걸음을 옮긴다. 할머니는 꼬마였을 때 오늘을 더 달라고 고집을 부리기도 했고 소녀였을 때는 친구들과 몰려와 오늘을 얼른 마시기도 했다. 좋아하는 사람과 오늘을 같이 마시기도 했으며 각자의 오늘을 마시기도 했다. 그리고 함께하던 사람의 오늘이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오늘 상회로 향하는 걸음이 무거워 벤치에 앉는다. 그녀에게는 많은 오늘이 있었고 그 오늘은 켜켜이 쌓여간다.

이 책에는 `오늘'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매일 아침을 맞듯이 우리는 매일 오늘 상회에 간다. 그리고 새로운 오늘을 마신다. 그렇지만 언제나 오늘을 소중하고 의미 있게 똑같이 보내기는 쉽지 않다. 너무 소중해 오래도록 기억하는 오늘도 있지만 기억나지 않는 오늘도 있고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은 오늘도 있다. 소녀처럼 얼른 마셔버리기도 하고 때로는 오늘을 더 누리고 싶어 아쉽기도 하다. 함께 하던 누군가의 오늘이 멈추는 것을 견뎌야 하는 오늘도 있다.

오늘을 어떻게 보냈는지의 가치는 감정으로 지급되어 기억으로 남는다. 벅찬 감동으로 기억되는 오늘은 두고두고 내 삶의 가치를 높여준다. 아쉬움과 원망으로 기억되는 오늘은 차라리 마시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하는 후회로 남아 삶의 태도에 대한 기준이 된다. 오늘이 모이고 모여 마음의 눈을 밝혀주고 더 빛나게 하는 것 같다. 마음의 눈은 많은 것을 볼 수 있으며 보이는 것 이면을 보는 힘이 있다. 오늘 상회의 불빛을 닮은 눈이다.

2020년과 2021년의 오늘에는 언제나 코로나가 있었다. 특별한 오늘을 맞이한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진학, 취업, 실직, 포기 등을 견디며 더 아프고 더 뜨거웠을 오늘, 공평하게 주어졌지만 저마다 달랐을 오늘이 있었을 것이다. “어서 오세요. 여기는 오늘 상회입니다.” 준비된 오늘을 마시러, 우리는 오늘도 오늘 상회로 향한다. 누군가는 무겁게, 누군가는 희망차게, 누군가는 더딘 발걸음이더라도 오늘이 우리를 기다린다.

2021년의 오늘을 3일 남겨두고 작은 책방에서 그림책테라피를 열었다. `선물 같은 오늘'을 나누고 싶어서이다. 때로는 힘들었을, 고달팠을, 아팠을 그리고 행복했을, 멋졌을 오늘을 이야기하고 그들의 오늘과 함께했다. 그러면서 오늘을 함께 하는 것이 얼마나 고맙고 귀한 것인지를 경험했다. 나는 오늘을 어떻게 마실까. 오늘은, 오늘 상회가 알려준 대로 오늘을 마셔봐야겠다. “눈을 감고 바람을 느끼고 오늘 피어난 꽃과 오늘 더 자란 풀향기를 맡으며 새로운 오늘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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