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린 기적의 아침
눈 내린 기적의 아침
  • 반영호 시인
  • 승인 2022.01.06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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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반영호 시인
반영호 시인

 

임인년(壬寅年) 호랑이해가 밝았다. 육십 간지 중 39번째로 임(壬)이 흑색, 인(寅)은 호랑이를 의미하는 것이니 검은 호랑이의 해이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눈이 소복이 내렸다. 마치 다사다난했던 지난해의 모든 것들을 깨끗이 지우고 새롭게 시작하라는 하늘의 뜻인 것만 같지 아니한가. 이 아침 시 한 수를 적어본다.

바람 소리는커녕 오히려/솜이불 평온한 밤이었다//헌데, 창문을 여는 순간/개벽의 아침이다//백색혁명/저토록 깨끗한 이가 앞장섰으니/누가 감히 대적했겠는가/숨소리조차 들리지 않게 이뤄낸 평정/포근함으로 이뤄낸 평화//산도들도 온통 백기를 들었다/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이룬/혁명의 새아침.

백수의 왕 호랑이가 온다니 온 산하가 벌벌 떨며 쥐 죽은 조용했던 거다.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날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반칠환 시인의 `새해 첫날'이다. “날고, 뛰고, 걷고, 기고, 구르는 것들은 저마다 가진 재주로 새해 첫날에 도착한다.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날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따지고 보면 그들이 어딘가에서 와서 새해 첫날에 도착한 것은 아니다. 다만 날고, 뛰고, 걷고, 기고, 구르고 있었을 뿐인데, 문득 새해 첫날이 도착한 것이다. 돌아보라. 황새·말·거북·달팽이·굼벵이만이 아니다. 저만치 떨어진 곳에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다들 촐랑거리는데, 제자리에서 꿈쩍도 않는 바위가 가장 의젓한 자태로 새해 첫날을 맞는다. 새해 첫날을 살아서 맞는다는 게 기적이다.

새해 첫날은 시간관념이 없는 소나 말, 고라니나 족제비에게는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오늘이다. 시간의 균등함으로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오늘에게 새해의 첫날로서 의미를 부여하고 산뜻한 기분으로 맞는 것은 오직 사람의 일이다.”며 장석주 시인은 `새해 첫날은 기적이다'고 하였다.

이게 누구의 숲인지 알 듯하다./그 사람 집은 마을에 있지만/그는 보지 못할 것이다, 내가 여기 멈춰 서서/자신의 숲에 눈 쌓이는 모습을 지켜보는 걸.//내 조랑말은 나를 기이하게 여길 것이다,/근처에 농가라곤 하나 없는데/숲과 얼어붙은 호수 사이에서/연중 가장 캄캄한 이 저녁에 길을 멈추었으니.//말은 방울을 흔들어댄다,/뭐가 잘못됐느냐고 묻기라도 하듯./그 밖의 소리는 오직 가볍게 스쳐가는/바람 소리, 부드러운 눈송이뿐.//숲은 아름답고, 어둡고, 깊다,/하지만 난 지켜야 할 약속이 있고,/잠들기 전에 갈 길이 멀다,/잠들기 전에 갈 길이 멀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눈 내리는 저녁 숲 가에 서서'이다. 로버트 리 프로스트는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지만 10살 때까지 미국 북동부에 있는 농장에서 성장했다.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식 때는 자작시를 낭송해, 시에 대한 전 국민적 관심을 촉발했던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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