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 푸드 `꿀 홍시'
슬로우 푸드 `꿀 홍시'
  • 우래제 전 중등교사
  • 승인 2022.01.05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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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들려주는 과학 이야기
우래제 전 중등교사
우래제 전 중등교사

 

`어적게도 홍시 하나/오늘에도 홍시 하나.//까마귀야. 까마귀야./ 우리 남게 웨 앉었나. // 우리 옵바 오시걸랑./ 맛뵐라구 남겨 뒀다.// 후락 딱 딱/훠이 훠이'(홍시. 정지용)

지금은 여러 가지 과수원도 많고, 다양한 외국산 과일이 쏟아져 들어와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그러나 보릿고개 있던 시절, 우리 고향엔 과일이 흔치 않았다. 과수원집이라면 아주 부잣집이었으니 주·부식 해결이 어려운 소작농들은 과일나무 따로 심을 여력이 없었을 것이다. 기껏해야 산에 자연적으로 자란 밤, 여기저기 호두나무 몇 그루, 굵은 대추나무 몇 그루 정도였다. 하지만 감나무는 집마다 한두 그루 정도 있을 정도로 많았다. 가을이 되면 온 동네가 울긋불긋 익어가는 감이 환상적이었다.

아마 시인의 집에도 감나무가 있었나 보다. 그런데 아마도 객지에 나가 있는 오빠 주려고 따지 않고 남겨둔 감을 까마귀가 쪼아 먹으러 날아온 모양이다. 그런데 왜 따서 두지 않고 그냥 나무에 두었을까?

한 나무에서 딴 홍시 맛도 시기에 따라 다양하다. 우선 감이 제대로 다 익기 전에 딴 홍시는 당도가 제일 떨어진다. 이 홍시는 감 꼭지 부분에 벌레가 침입해 영양분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생긴 것이다. 그래도 배고픈 시절 학교 갔다 와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이런 홍시를 찾던 일이다. 이때의 홍시는 아 이제 홍시 맛이 좀 들었구나 하는 정도다. 보통은 늦가을, 감이 주홍색으로 변할 때 단단한 땡감을 딴다. 이 감을 많은 경우 카바이트를 써서 연시를 만들기도 했는데 지금은 인체에 해가 없는 연화제를 사용한다. 소량이면 사과를 같이 넣어 밀봉하면 며칠 사이에 홍시가 된다. 사과에서 발생하는 에틸렌 가스가 과일의 숙성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단지에 켜켜이 쌓아 두었다가 한겨울에 꺼내 먹었다. 이렇게 만든 홍시 중에 가장 맛있는 것은 단지 속의 홍시였다.

그리고 가장 맛있는 홍시 맛. 나무에 남겨진 감이 무서리, 된서리 맞고 눈도 한두 번 맞은 후에 딴 홍시! 이것이 홍시 맛의 백미다. 겉껍질이 약간 두껍지만 꿀이 뚝뚝 흐르는 듯, 그저 환상적인 꿀맛 홍시다. 아마도 시인은 나처럼 그 환상적인 꿀맛 홍시를 알았던 모양이다.

문제는 왜 같은 나무에서 생긴 같은 감으로 만든 홍시의 맛이 다르냐 하는 것이다. 우선 일찍 만들어진 홍시는 각종 영양분이 덜 농축되어 맛이 떨어질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같은 날 따서 카바이트, 연화제, 사과를 써서 만든 홍시와 단지에 서서히 숙성시킨 홍시의 맛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급하게 만드는 패스트푸드보다 슬로우 푸드가 더 좋다.'라는 말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그리고 찬 서리, 찬바람 맞은 나무에서 방금 딴 홍시가 더 달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탄닌이 당으로 변하는 양, 종류, 온도에 따라 달라지는 당도에 대한 미각의 차이 등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궁금하기만 하다.

이제 노인들만 있는 시골에 방치된 감, 까마귀밥으로 남겨둔 감들도 떨어져 몇 개 남지 않았다. 꿀 홍시 하나 따 먹어볼까? 긴 주머니 장대 들고 나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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