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寺의 하루
山寺의 하루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22.01.05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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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룡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제목이 고즈넉하고 평온한 느낌이라구? 과연 그럴까?

알람이 울린다. 옷을 챙겨 입고 방 밖으로 나선다. 서늘한 바람이 얼굴을 스쳐 잠을 쫓아버린다.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시원함이 좋다. 세면장에서 가글을 하며 목을 청소해 뱉어낸다. 무색이다. 몸이 청정해졌다는 증거라 기분이 좋다.

방으로 돌아와 단단히 챙겨 입고 옆방의 관음전 스님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법당으로 간다. 옆 방 스님을 보면 경이롭다. 새벽 두 시 반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일 년 365일을 하루도 빼지 않고 절을 일주하며 목탁을 쳐 사람들을 깨우고 이어서 종을 친다. 밥 때에는 공양간의 종을 치고, 저녁 여섯 시면 하루 마감을 알리는 종을 친다. 하루도 안 빼고 이를 반복한다. 시지푸스의 신화가 생각난다. 굴려 올리면 떨어지는 바위를 산 위로 밀어올리는 일을 평생 반복한다는 건 얼마나 지겨울까? 내가 그걸 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 같다.

대웅전에서 온풍기를 켜고 물을 올리고 촛불 켜고 좌복을 펴고 절을 시작한다. 절을 하면 몸에서 열이 나 추위가 한결 덜하다. 법종 소리 끝나면 주지 스님과 함께 예불 올린다. 예불 끝나면 다시 절을 하고 가만히 앉아 마음을 가다듬는다. 마음을 가다듬는다고 하지만 마음속은 전쟁이다. 몸은 법당 안에 있지만 생각은 온 사방 천지, 과거, 미래를 떠돌아다닌다. 생각을 붙들어 맺는가 싶으면 어느새 졸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조금 지나면 좀이 쑤시고 지루해지면서 떨쳐 일어나고 싶어진다.

한참을 전쟁하다가 방으로 들어올 때가 되면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방문 열고 들어오면 펼쳐져 있는 이불이 나를 반긴다. 따뜻한 이불 속으로 들어가면 행복해진다. 스르르 잠 속으로 빠져든다. 한잠 자고 눈을 뜨면 출출하다. 아침 공양 시간이 여섯 신데 아침을 먹고 자면 속이 거북해서 안 먹고 잔다. 시원한 물 한 잔 마시고 요 밑에 저장해놓은 따끈한 두유를 꺼내 요깃거리로 아침을 대신한다. 요깃거리는 고구마, 빵, 떡, 과일 등 다양하다. 절 생활은 나름대로 풍요롭다. 진수성찬은 아니더라도 먹는 즐거움이 소소하다.

아침 요기 후 본격적으로 씻고 간단한 산책 후 다시 방으로 돌아와 요가로 몸을 추스른다. 요가 후 또다시 좌복 위의 전쟁상태로 돌입한다. 내 머릿속에는 즉각 자동적으로 생각이 떠돌아다닌다. 어릴 적 멀리 버려둔 기억까지 떠올라 괴롭힌다. 얼굴에는 주름이 생기지만 생각에는 골짜기가 생긴다. 얼굴에 주름이 잡혔다면 자신을 사로잡고 있는 생각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나도 모르게 내가 집착하고 있는 사안으로 생각이 가 있다. 환장할 노릇이다. 한참 전쟁을 겪다 보면 옆방 스님이 어느새 밥 때를 알리는 공양간의 종을 친다.

점심 먹고 긴 산책을 한다. 산책 도중에는 발자국을 센다. 하나, 둘… 일곱/하나, 둘… 일곱. 이렇게 세다 보면 어느새 세는 걸 잃어버리고 생각을 하고 있다. 또 전쟁이다. 산책 후 요가로 몸을 정비하고 또 방석 위의 전쟁에 몰입한다. 저녁 먹고도 일과는 같다. 산책, 요가, 전쟁. 이러다 보면 어느덧 잘 때다.

오늘은 공부가 얼마나 됐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자다 보면 안다. 어떻게 아냐구? 나이가 들면 자다가 자주 깬다. 그럼 다시 잔다. 자려고 하는데 잠이 안 온다. 그럼 공부가 안된 거다. 잠이 안 오는 건 생각이 많기 때문이다. 새벽부터 하루 종일 전쟁을 하면서 생각을 쫓아냈는데 생각이 많아 잠을 못 자는 건 온종일 헛수고했다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벽돌을 갈아 거울을 만들려고 한 것이다.

산사의 하루는 생각한 것만큼 평온하거나 한가하지 않다. 전쟁, 좌절의 연속이다. 나처럼 업장이 두터운 인간에게는 특히 그렇다.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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