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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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은숙 청주 생명초·중 사서교사
  • 승인 2022.01.03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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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권하는 행복한 책 읽기
민은숙 청주 생명초·중 사서교사
민은숙 청주 생명초·중 사서교사

 

춥다. 오늘은 영하 10도라는 기상캐스터의 목소리가 생각난다. 냉동 칸보다 밖이 더 추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영하 46도라니. 인간이 살 수 있나 싶다.

이 책 `스노볼'(박소영 저, 창비)은 사상 초유의 기후 재난으로 혹한이 닥친 세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세상은 열차로 이어져 있고 바깥사람들은 페달을 밟아 전기를 생산한다. 생산하는 전기는 스노볼이라는 지역으로 공급된다. 스노볼은 그러한 전기로 따스함을 유지한다. 스노볼에 사는 사람들, 액터는 따뜻함을 누리는 대신 자신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바깥 사람들에게 TV로 공개한다. 디렉터들은 이러한 액터들의 삶을 드라마로 만든다. 전기를 받고 자신의 삶을 오락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이 스노볼의 시스템은 이본 미디어 그룹에 의해 만들어지고, 대를 이어 통제되고 있다.

이 책 주인공은 평범한 열여섯 살의 전초밤이라는 소녀다. 초밤이는 스노볼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리얼리티 드라마의 주인공인 고해리와 닮은 외모를 가졌다. 고해리는 머리가 길고 잘 관리된 피부를 가진 반면, 초밤이는 추위 때문에 머리를 짧게 잘랐고 뺨은 추위에 터 있다. 처음에 표지를 보고 남자아이가 주인공인 이야기인가 생각했는데 추위 때문에 그렇다. 배우인 해리와는 달리 평범하게 발전소에서 일해 전기를 생산하는 일을 하고 필름 스쿨에 진학해 디렉터가 되기를 바라지만 번번이 낙방한다.

그러던 어느 날 초밤이가 동경하던 차설 디렉터가 나타난다. 차설은 고해리가 자살했음을 알리고 초밤이에게 비슷한 외모를 가졌으니 해리로 살아갈 것을 권한다. 그렇게 되면 필름 스쿨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돕겠다는 약속을 한다. 디렉터가 되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제안을 받아들여 스노볼로 향해 고해리로 살아가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민규동 감독이 이 책을 평하며 트루먼 쇼와 설국열차를 이야기했다. 사실 나도 읽으면서 그 두 작품과 소설 헝거 게임, 드라마 블랙 미러가 연상이 되기는 했다. 다른 사람들의 서평을 읽어보니 다들 비슷한 생각을 했나 보다. 솔직히 초반을 읽고 아류작 아닌가 싶어 이거 괜찮은가 하는 걱정을 가지고 책을 읽었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전혀 다른 새로운 이야기가 튀어나온다.

오래간만에 흥미진진한 책을 읽었다. 책 소개를 다시 보니 창비와 카카오페이지에서 함께 주관한 영어덜트 장르문학상 수상작으로 영상화 예정이란다. 약간의 로맨스적인 부분도 있고, 추리소설적인 요소도 있고, 그 와중에 미디어에 대한 경고도 잘 어우렀다. 어떻게 만들어질지, 어떤 감독이 이 이야기를 다시 풀어갈지가 걱정되지만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서 정말 대단한 작품이 나올 것 같다. 외전도 더 읽고 싶어진다. 외전으로 액터나 디렉터들, 이본 그룹 이야기 몇 개 더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차가운 겨울이 지나기 전에 무언가 심심한데 그래도 시간을 헛되게 보내고 싶지는 않다면 이 책을 가지고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 읽으면 좋겠다. 딸기와 오렌지 주스도 갖춰두면 좋으려나. 이 책은 겨울에 읽어야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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