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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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례 수필가
  • 승인 2021.12.30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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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용례 수필가

 

동쪽 하늘이 붉게 밝아 오는 것이 보입니다. 지금 이 순간 내게 소중한 하루를 허락 받는 것 같습니다.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들입니다. 겨울 새벽은 아버지의 근엄한 얼굴처럼 고요합니다. 마당의 소나무, 꽃과 잎을 다 떨군 베롱나무와 단풍나무도 고요합니다. 마당에 깔아놓은 황금색 카펫엔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아 반짝입니다. 초록 색이였을 때 보다 따스해 보여 좋습니다. 햇볕만 나오면 사라지는 하얀 서리, 서리는 짧게 머물 수밖에 없기에 이 새벽 더욱 반짝이나봅니다. 이 고요가 사라지면 다시 소란스런 일상이 될 것입니다. 소중하게 허락받은 하루를 어떻게 쓸 것인가 깊이 생각합니다.

우리는 너무 분주한 세상에 삽니다. 사람들은 잠시 할 일이 없거나 약속이 잡히지 않은 날은 불안하다고합니다. 잠시 견디는 것도 참지 못하고 울리지 않는 전화기를 들여다보고 안절부절 못합니다.

나도 그랬었습니다. 이순 중반이 되고 보니 이런 고요가 이렇게 소중할 수가 없습니다.

너무나 고요해서 내 행동은 말할 것도 없고 생각조차 조심스럽습니다. 상스러운 생각을 하면 안 될 것 같고 행동도 거칠게 하면 안 될 것 같아 비질도 조심스럽습니다. 거실에 있는 화분에 물을 주는 일도 새색시처럼 얌전하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시간 충만함으로 꽉 차있습니다. 나만이 은밀하게 즐기는 비밀 같습니다. 이 고요는 하루를 그리는 그림의 여백 같기도 합니다.

여름 이 시간은 한낮처럼 시끄러울 것 입니다. 시골은 새벽 4시면 경운기 소리 트럭 지나가는 소리 예초기 돌리는 소리로 시끄럽습니다. 산다는 것은 소란스러운 한때를 보내고 나면 이런 고요의 날도 있어 살아가는 가 봅니다. 매일 시끄러우면 정신을 차릴 수가 없고 또 매일 이렇게 고요하기만 하다면 재미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주위가 고요하다는 것은 외로울 수도 있고 자유로울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의 일상은 늘 분주하지만 가끔은 혼자이고 싶은 날 잠적이란 단어를 생각하는 날이 있나봅니다. 사람은 사람들 속에서 희노애락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삶에 가치가 없는 순간은 없는 것 같습니다. 즐거우면 즐거운 대로 괴로우면 괴로운 대로 거기서 살아있음의 뜨거움을 느낍니다.

사람 사는 세상이 어찌 좋은 일만 있겠습니까. 어느 날은 괴로운 일이 어떤 순간에는 가슴 벅찬 일이 우리의 삶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겨울 새벽은 고요한 날이 많습니다. 해가 뜨면 새들이 나르고 사람들은 잠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고 이 고요를 깹니다. 여행을 떠나 분주히 돌아다니다가 숙소에 들어와 쉬는 시간도 여행인 것처럼 늘 분주하지만 이 새벽 잠시의 고요도 삶의 풍경입니다.

올해 삼백 육십 여개의 하루를 받았습니다. 들여다 보니 어떤 하루는 꽃으로 채우고 어떤 날은 상처로 또 하루는 아픔으로 어떤 날은 허접한 쓰레기로 채워진 날도 있지만 내가 살아온 역사고 인생입니다. 모두가 소중합니다. 오늘 받아든 하루는 다시 올 수 없는 귀한 날입니다.

어른들이 이 새벽에 정화수 떠놓고 신께 자식과 집안의 평안을 기원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저도 오늘은 그 절대자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2년의 시간을 전 세계가 괴로웠습니다. 사람들의 발을 묵어놓은 코로나19 이제는 제발 거두어 가 달라고 부탁하고 싶은 새벽입니다. 내년에는 마스크를 벗고 환하게 웃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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